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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경제 리창 vs 안보 차이치…시진핑 3기 진짜 2인자는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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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기업 채무를 잘 해결하라. 생산과 투자에 중요하다. 경제 회복을 위해 중요하다.”

리창(李强·64) 중국 총리는 지난 20일 국무원(정부) 상무회의에서 국영기업의 부채 해결을 촉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총리 취임 후 반년을 보낸 리 총리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부동산 침체, 수출·투자·소비 부진에 시진핑(習近平·70) 3기 경제 사령탑 리 총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27일 옌안 혁명박물관을 방문한 20기 중앙상무위원 일곱명이 걷고 있다. 시진핑(가운데) 당 총서기 왼쪽에 서열 5위 차이치가, 오른쪽에 2위 리창이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10월 27일 옌안 혁명박물관을 방문한 20기 중앙상무위원 일곱명이 걷고 있다. 시진핑(가운데) 당 총서기 왼쪽에 서열 5위 차이치가, 오른쪽에 2위 리창이 있다. 신화=연합뉴스

“총서기는 이미 책임·요구·노선·방법은 물론 난제 해결의 ‘황금열쇠’를 제시했다.”
지난 5일 이른바 ‘시진핑 사상 교육 1기 결산 및 2기 배치 회의’에서 차이치(蔡奇·68) 정치국상무위원의 발언이다. 시진핑 3기 통일전선부·조직부·선전부·정법위·감찰위·공안부 일인자로 꾸린 중앙서기처를 지휘하는 서열 5위 차이치가 사실상의 이인자로 불리는 비결은 바로 충성이다.

중국 경제와 안보를 각각 책임지는 리창과 차이치의 경쟁이 치열하다. “방역과 경제·사회 발전을 잘 통합하며, 발전과 안보를 잘 통합하라”는 지난 2월 20기 2중 전회(2차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 결의를 리창과 차이치로 의인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외국에 고품질의 개방을 다짐하면서도 반(反)간첩법을 개정하고 간부에게 아이폰·테슬라를 금지했다. 우회전 깜빡이를 켠 채 좌회전하는 듯하다. 약체 총리 리창과 막강한 차이치 중 누가 진짜 이인자인지 분간도 어렵다. 이러한 경제와 안보의 부조화 배후에는 시진핑 특유의 ‘견제와 균형’ 용인술이 자리한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전용기 타지 않는 리창 총리

1959년 저장성 원저우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난 리창 총리는 지난 2016년 시 주석이 그를 장쑤성 서기에 임명하기 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다. 시진핑 사단 중 저장방(浙江幇)에서도 천민얼(陳敏爾·63)에게 밀렸다. 지난 3월 13일 인민대회당의 첫 내외신 총리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본 리 총리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튿날 인민일보는 기자 회견 내용을 2면에 보도했다. 전임 리커창(李克强) 총리 회견이 줄곧 1면에 실렸던 것과 달랐다.

3월 17일 국무원 1차 전체 회의에서 그는 “이번 정부의 업무는 당 중앙의 결정을 관철하고 실천하는 집행자이자 행동파가 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정책 개발 아닌 효율적인 집행을 요구했다. 개편된 국무원 사이트에는 총리 동정란까지 없앴다.

6월 취임 후 첫 프랑스·독일 순방에 전임 총리가 타던 전용기(專機) 대신 전세기를 탔다. 오직 시 주석만 전용기를 탈 수 있는 의전을 확립했다. 리 총리의 몸사림 뒤에는 ‘이인자의 궁지’가 있다. 마오쩌둥 시대 류사오치(劉少奇)·린뱌오(林彪), 덩샤오핑 시대 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紫陽)까지, 역대 이인자 중엔 비참한 말로를 맞았던 이들이 많다.

23일 차이치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판공청 주임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덕수 총리의 양자회담에 배석했다. CC-TV 캡처

23일 차이치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판공청 주임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덕수 총리의 양자회담에 배석했다. CC-TV 캡처

시진핑 비서실장의 막강한 권력

지난 3월 차이치는 전인대에서 딩쉐샹(丁薛祥)과 바통 터치하며 시 주석의 비서실장인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았다. 명목상 동급자인 정치국 상무위원이 총서기의 비서실장이 됐다. 집단지도체제의 종식과 사실상의 당 주석제 부활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마오쩌둥의 경호 대장 출신으로 군대를 동원해 문혁 4인방을 체포했던 왕둥싱(王東興)이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상무위원에 오른 이후 첫 번째 파격이다.

당 실무를 처리하는 중앙서기처의 역대 어떤 선임자보다 막강한 권력도 누리고 있다. 넘버2 리창과 똑같이 초권력기구인 중앙국가안전위원회(국안위) 부주석과 중앙전면심화개혁위원회(심개위) 부주임까지 동시에 임명되면서다. 서열 3위 자오러지(趙樂際)에게 국안위 부주석만, 4위 왕후닝(王滬寧)에게 심개위 부주임만 맡긴 것과 대조적이다. 7인의 상무위원회를 국안위와 심개위 정·부직을 맡은 서열 1~5위까지의 일진(Tier I)과 그렇지 못한 이진(Tier II)으로 구분했다.

‘내 사람 키우기’ 인맥 경합도 시작

리창과 차이치의 인맥 다툼도 시작된 듯하다. 지난 3월 리 총리가 출범시킨 내각은 장관급 27명 중 신임은 3명에 불과했다. 리 총리 측 인사도 이름을 올렸다. 2016년 장쑤성에서 호흡을 맞췄던 우정룽(吳政隆·59)을 국무위원인 국무원비서장에 앉혔다. 저장성장 시절 측근 왕강(王剛·51)을 장관급인 중앙선전부 부부장에 발탁했고, 브레인 캉쉬핑(康旭平·57)은 차관급인 국무원연구실 부주임에 임명했다. 리 총리가 내년 3월 전인대에서 진행될 장관 인사에 자기 사람을 얼마나 심을지 주목된다. 그러기 위해선 당정 인사권을 다루는 중앙서기처를 장악한 차이치의 견제를 뚫어야 한다.

차이치 인맥도 약진 중이다. 중앙조직부의 지역 간 간부 교류 프로그램을 이용해 베이징 서기 시절 호흡을 맞췄던 간부들을 전국 곳곳의 부성장(차관급)에 포진시켰다. 전 베이징시 비서장 다이빈빈(戴彬彬·55)은 산시(陝西)성 부성장, 전 퉁저우구 서기 쩡짠룽(曾贊榮·54)은 산둥성 부성장으로 영전했다. 쩡 부성장은 20기 중앙후보위원에도 발탁됐다. 물론 이들의 인맥 만들기가 파벌로 비쳐서는 곤란하다. 시 주석이 눈살을 찌푸리는 수준이 된다면 '넘버2'라도 권좌가 금방 위태롭기 십상이다.

‘의도적 딜레마’…안보와 경제 충돌

리창과 차이치는 정책 우선순위도 충돌한다. 리 총리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회복과 성장이다. 때문에 친시장적 조치가 절실하다. 우궈광(吳國光) 스탠퍼드대 선임연구원은 차이나리더십모니터 가을호에서 “지난 3월 양회 직후 국가 지도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새롭게 노력하기로 결정했다”며 “정권의 재정 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반면 차이치에게 경제는 부차적인 이슈다. 그에겐 이념과 국가안보가 최우선이다. 지난 3월 말 공안 당국은 미국 컨설팅 기업인 민츠 그룹의 베이징 사무소를 폐쇄했다. 4월에는 상하이에서 베인앤드컴퍼니를, 5월에는 캡비전을 단속했다. 국가안전부가 SNS에서 외국인 간첩 고발을 권장하고. 대(對)미국 외교를 훈수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차이치가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공안과 안전부를 지휘하는 중앙정법위 일·이인자인 천원칭(陳文清)과 왕샤오훙(王小洪)이 차이치의 중앙서기처 멤버임은 분명하다.

리창의 경제와 차이치의 안보가 충돌하는 ‘의도된 딜레마’는 위험하다. 우 연구원은 ”당 수뇌부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경쟁은 각급 지방정부와 다양한 정부부처로 복제되면서 다양한 불안정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리창과 차이치 둘 사이의 ‘견제와 균형’은 과거 공청단과 상하이방·태자당이 펼쳤던 노선 경쟁과 달리 충성파끼리 펼치는 이인자 다툼으로 볼 수 있다”며 “시진핑 노선의 독주를 견제할 정치 세력이 없다는 게 현 중국의 최대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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