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추석 쇠는 풍경
설 연휴에는 175만원 썼다. 그렇다면 이번 추석에는?
김용주(46·경기도 고양) 과장은 전전긍긍했다. 나흘간의 설 연휴(1월 21~24일)에 110만원을 지출했다는 김영철(44) 부장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들, 지난 설 연휴 씀씀이 기사(중앙SUNDAY 1월 21일 자 2면)에 등장한, ‘그때 그 사람들’이다. 4인 가구, 월 450만원 소득의 중산층 직장인이다. 물가(지난달 3.4%)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미리 추석’을 쇠는 이들을 통해 엿새간 이어지는 추석 연휴 씀씀이를 가늠해 본다. 특정 상황에 따라 비용은 다를 수 있다.
추석 연휴 2주 전인 지난 주말(16~17일) 김영철씨는 ‘미리 추석’을 쇠었다. 장손인 영철씨는 올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57%(한국리서치) 중 한 명이다. 그는 대신 온라인 성묘를 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2020년 추석 때 온라인 추모라는 이름으로 도입했다. 당시 23만여 명이 이용했다. 이후 2021년 추석에 30만 명을 넘겼다. 올해 설은 19만여 명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도입했지만, 영철씨처럼 ‘미리 추석(혹은 설)’을 쇠기 위한 방편도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장장 엿새에 걸친 추석 연휴에 영철씨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일본 여행을 갈 겁니다.”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이번 추석 연휴에 해외여행 계획이 있다는 사람은 24%(성인 1000명 설문)에 달한다. 지난 설 연휴 19%에 비해 5%포인트나 늘었다. 지난해 추석(7%)보다는 3배 이상 증가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이미 3월부터 ‘인기’ 수준이던 예약 주문이 8월 초순부터 10월 2일 임시공휴일 지정설이 나오면서 ‘치열’ 수준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영철씨도 “전쟁 치르듯 여행 티켓을 챙겼다”고 할 정도였다. 15일 하나투어에 따르면 9월 29일~10월 8일 출발하는 해외여행 예약 건수는 올해 여름 성수기(7월 27일~8월 5일) 예약 건수보다 30% 많다. 긴 연휴로 유럽과 미국 등 장거리 여행이 인기다. 완판율 90%다. 하지만 상반기부터 지켜온 일본 여행의 열기는 이어지고 있다. 예약의 24%가 일본 행이다. 베트남(19%)이 그 뒤를 잇는다.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원장은 “코로나19 그림자에서 완연히 벗어난 이후의 첫 계절이자 첫 황금연휴라, 해외여행 욕구가 급격히 뛰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철씨는 귀국 후 지난 설처럼 양가 부모님과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양가 부모님 모두 좋아하는 냉면이 설과 추석 사이 9.5%나 올라 한 그릇 11200원(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서울 기준)에 육박하고 있다. 삼겹살 1인분(200g)이 1만9000원대에서 그새 ‘보합세’를 보인 것은 다행일까. 외식 물가를 가늠하는 냉면·삼겹살 등 8개 메뉴의 평균 가격은 지난 설에 비해 3.7%가 올랐다. 영철씨가 검색을 해보니 서울 시내 유명 냉면집은 한 그릇 14000원, 제육 한 접시는 3만원. 그는 “10만원 이하로는 외식은 꿈도 못 꾸는구나”라며 혼잣말을 했다.
“김밥 한 줄이 5000원이라니!”
김용주씨는 지난 주말 강원도 홍천에 있는 조부모 묘소에 ‘미리 성묘’를 다녀오면서 고속도로 휴게소 메뉴를 보고 놀랐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서는 3215원이지만, 2000원 가까이 더 비쌌다. 차에 휘발유를 5만원 어치 넣었는데, 주유 눈금은 찔끔 움직일 뿐이었다. 휘발유 값은 지난 설 연휴(1월 3주차) 리터당 1560원에서 1760원(9월 2주차)으로 12.8% 올랐다. 용주씨는 대체 교통수단 비용을 알아봤다. 고속·시외버스는 설보다 5% 올랐다. 택시비는 26%(기본요금 3800원→4800원), 시내버스비는 25%(서울 1200원→1500원) 인상됐다. 용주씨는 “시민의 ‘발’이 죄다 하이킥을 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홍천 왕복 차량 기름값을 의식한 용주씨는 이번 추석에는 벌초대행을 의뢰했다. 강원도만 해도 벌초 대행 건수가 2019년 3498건에서 지난해 5576건으로 솟구쳤다. 비용은 묘소 규모에 따라 5만원~15만원. 평균 8만5000원선이다. 하지만 ‘미리 성묘’를 가던 용주씨는 고속도로에 갇혀 있었다. 용주씨처럼 ‘미리 성묘’를 가는 차량으로 북새통이었다.
영철씨와 달리 ‘오프라인’ 성묘와 차례를 꼬박꼬박 챙기는 용주씨는 오늘(23일) ‘미리 추석’을 쇠러 경북 영주로 내려간다. 설과 달리 이번엔 부모님께서 차례상을 차린다고 했다. 한국물가정보가 밝힌 올 차례상 비용은 지난 설(35만9740원·대형마트 기준)에 이어 역대 최고치(40만3280원)를 다시 기록했다. 용주씨는 부모님께 차례상 비용 외에 용돈도 드려야 한다. 차량 기름은 20만원 어치 채워놨다. 추석 연휴 때는 국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1년 새 국내 콘도 이용료와 호텔 숙박료는 7.7% 올랐다.
용주씨는 국내여행을 하며 휴게소에서 5000원짜리 김밥을 다시 먹을 것 같고, 영철씨는 부모님과 14000원짜리 냉면을 씹을 것 같다. 모두 ‘통계’를 웃도는 ‘현실’의 비용이다. 유진그룹이 직원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번 추석 연휴 예상 경비는평균 86만원. 지난 설 연휴 79만3000원에서 8.5% 늘었다. 용주씨는 230만원선, 영철씨는 280만원선을 꼽았다. 긴 연휴만큼 비용도 늘었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 경비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86만원? 설에도 그랬지만 실제 그렇게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4인 가구 중산층 직장인 임모(52)씨는 간소한 차례를 지내고 수도권 근교 산행과 궁궐 나들이 정도로 연휴를 보내기로 했다. 그는 “자신은 없지만, 70~80만원에서 맞출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