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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본 없다'며 돌려보낸 독립운동가 손자, 재판 끝 "손자 맞다" 인정

중앙일보

입력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 뉴스1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 뉴스1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족 등록을 거부당했던 독립유공자 후손이 재판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인정받았다.

부산고등법원 제1행정부(부장 김문관·정동진·김정환)는 22일 애국지사인 주익 선생(1891~1943)의 손자 A씨가 제기한 ‘독립유공자 유족등록 거부 처분 쉬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원고 주모(80)씨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주익 선생이 너의 할아버지이고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듣고 자랐다.

주씨는 주익 선생의 기록이 담겨 있는 북청군지를 오랜 기간 간직했으며, 제사를 계속 지내는 등 자신이 주 선생의 손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왔다.

2002년 대한적십자사에 남북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하며 할아버지로 주익 선생을 기재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주씨는 지난 2019년 주익 선생의 손자 자격으로 건국훈장 애국장 훈장증을 수령하고, 독립유공자 유족등록 신청을 했다.

그러나 이듬해 부산보훈청은 “주씨의 아버지가 주익 선생의 자녀라고 볼 수 있는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입증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훈장증을 반환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주씨가 자신은 주 선생의 손자가 맞다며 부산보훈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제적등본 등의 공적인 자료가 없어 주익 선생과 주씨 아버지의 부자 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은 이 판결을 뒤집고 주씨 아버지와 주익 선생은 부자관계가 맞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와 그 가족들의 존재와 진술은 유력한 증거로 평가될 수 있고, 원고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관계도 인정된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특히 신안 주씨 족보는 앞서 1심에서 객관적인 증명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받았지만, 2심은 대종회 차원의 등재 과정이나 후손을 자처하는 다른 사람이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일정 범위 내에서 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봤다.

또 주씨 아버지의 대학교 학적부상 본적과 주익 선생의 본적 주소지가 ‘함경남도 북청군 속후면 용전리’ 한 주소로 일치하는 점 등도 근거로 들었다.

주씨의 연령이나 독립운동가 자손은 손자까지만 등록이 허용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주씨가 거짓으로 자손을 자처할 동기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주익 선생에 대한 일제의 탄압 가능성, 광복과 6·25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 피난과 원고 가족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에서 신분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공적인 자료가 완전하게 존재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확정하는 사건에서는 그 후손임을 주장하는 사람의 존재와 진술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증거로 보아 그 신빙성 분석에 상당한 비중을 둬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단지 사건 관계자의 진술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차적인 증거 가치만을 부여하는 것은 자칫 숨은 독립유공자의 후손 찾기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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