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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병억의 마켓 나우

녹색규제로 권력 키우는 유럽중앙은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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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병억 대구대학교 교수(국제관계)

안병억 대구대학교 교수(국제관계)

남극의 빙산이 더 빠르게 녹아내리고 러시아의 영구 동토층이 붕괴한다면? 대규모 홍수로 식량 위기가 악화하고 공급망도 교란될 것이다. 또 보험회사도 사상 최대 규모의 보험금 지급 요청에 존립이 위태롭게 될 수 있다.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주요국 중앙은행은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을까. 유럽중앙은행(ECB)이 앞장서서 기후위기에 대응해 왔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그렇지 않다. 제롬 파월 의장은 “Fed는 기후정책 결정자가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라고 지난 1월 초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의 27개 회원국 중 20개국이 단일화폐 유로를 사용한다. ECB는 EU 회원국이나 그 어떤 EU 기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 독립된 중앙은행으로서, EU 정책 전반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ECB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자체적인 판단으로 행동에 나섰다. 2021년 7월 기후변화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상세한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금융기관은 기관투자가로서 회사채나 국채를 매입한다. 그런데 화석연료를 대량 배출하는 에너지나 정유 등의 대기업 회사채가 종종 상위 투자등급을 유지하기 때문에 금융기관은 이들의 회사채를 꽤 매입했다. 하지만 ECB가 녹색전환을 정책에 반영함에 따라 이 기업들의 투자등급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게 되면 이들 대기업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때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하고, 이런 회사채를 보유한 은행의 자본 적정성도 덩달아 하락할 수 있다.

ECB는 유로존 경기 부양을 위해 2015년 3월부터 2022년 7월까지 국채나 회사채를 대규모로 매입했다. 매입한 자산 규모는 총 4조9500억 유로(약 6930조원)인데, 회사채의 비중은 8%로 약 3860억 유로에 달한다. 작년 10월부터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가 연간 300억 유로(약 42조원) 상환되고 있다. ECB는 상환받은 원금을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의 회사채에 재투자한다. 또한 내년부터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회사채만을 담보로 받기로 했다. 지난 6일 발표한 기후 관련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서 “녹색전환에 빠른 은행일수록 중기적으로 신용 리스크가 하락할 것”이라고 ECB는 진단했다.

EU는 국제 정치·경제에서 규제로 존재감을 키워온 ‘규제 권력’이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EC)는 2050년까지 유럽을 ‘탄소 중립 대륙’으로 만들겠다는 ‘그린 딜’을 2019년 12월 발표했다. ECB의 기후위기 적극 대응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다. EU의 이런 규제가 우리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도 대응해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교수(국제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