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박 솎아내" 체포안 가결에 개딸 울분…전철역 셔터도 휘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지지자들은 눈물을 보였다. 이찬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지지자들은 눈물을 보였다. 이찬규 기자

21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국회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자, 이 대표 지지자들은 이날 늦은 저녁까지 국회 앞을 떠나지 못하고 거친 욕설과 함께 울분을 토해냈다. “xx 이게 나라냐. 수박xx들” “수박을 솎아내야 한다”는 고성이 곳곳에서 들렸다. 수박은 29표 가량의 체포동의안 가결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을 의미하는 멸칭이다.

이 대표의 원외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와 민주당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 등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인근에서 ‘검찰독재정권의 야당 탄압 저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4000여명이 참석했다. 경찰은 국회의사당역과 더불어민주당사 등 여의도 일대에 기동대 63개 부대 3700여명을 투입했다.

분위기는 국회 본회의가 열린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달아올랐다. 오후 3시 40분쯤 이 대표 체포동의 요청 이유에 대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설명이 시작되자, 지지자들은 거센 표현을 쓰며 부결을 주장했다. 단상에 선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한동훈 장관을 조선제일검이라고 부르던데 사실은 사이코패스다. 윤석열과 한동훈을 탄핵해야 한다”며 “정의당이 체포동의안 찬성에 나서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포동의안 표결이 시작됐을 때는 현장이 초조감으로 가득했다. 참석자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거나 두 눈을 감은 채 생각에 빠졌다. 집회 무대에서 중계하는 화면이 끊기자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이 체포동의안 표결을 기다리면서 기도하고 있다. 이찬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이 체포동의안 표결을 기다리면서 기도하고 있다. 이찬규 기자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선언하자, 긴장감은 순식간에 분노와 슬픔으로 뒤바뀌었다. 지지자들은 ‘이재명을 지켜내자’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땅에 내팽개치고, 서로를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한 여성은 “이재명 대표 살려내”라며 얼굴을 감싸고 오열했다. 집회에 참석한 민주당의 지방의회 의원을 붙잡은 채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내가 알던 민주당이 맞냐”고 따지는 이도 있었다. “검찰 독재정권. 검사 xx놈들” 등 현 정권을 향한 분노도 표출됐다.

일부 참석자들은 “국회로 쳐들어가서 항의하자” “수박 의원들을 솎아내야 한다” “검찰로 가서 부숴버리자” 등의 극단적 발언을 쏟아냈다. 주최 측은 “잠시의 좌절일뿐,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다. 질서 있는 싸움을 해야 한다”며 이들을 제지했지만, 흥분한 참석자들은 오히려 주최 측을 향해 “가만히 있자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너희가 수박이다” 등의 항의를 쏟아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에 항의하기 위해 일부 시위대가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사당역 셔터가 망가졌다. 트위터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에 항의하기 위해 일부 시위대가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사당역 셔터가 망가졌다. 트위터 캡처

결국 흥분한 일부 지지자들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다 지하철역 출입구 셔터가 휘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과 서울메트로 9호선은 낮 12시쯤부터 국회의사당역 1·6번 출입을 일부 통제하다가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이후 오후 5시쯤 6번 출구 셔터를 내렸다. 하지만 흥분한 이 대표 지지자들이 셔터를 뜯어내고 진입을 시도하려다 경찰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셔터가 손상되기도 했다. 우회로를 통해 국회 앞까지 진출한 일부 지지자들은 “국회는 원래 들어갈 수 있는 곳 아니냐. 담당자 나와라. 국회의원에게 따질 것”이라고 외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국회 진입을 시도했지만, 제지당했다. 이찬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국회 진입을 시도했지만, 제지당했다. 이찬규 기자

민주당 당사로 몰려간 지지자들은 당사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너희가 사람이냐”며 “우리가 가만 안 둔다. 목가지를 쳐버릴 것이다”고 울부짖었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대표단과 민주당 국회의원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격앙된 지지자들은 당사를 오가는 차를 보면 “수박 아니냐”며 차량을 발로 찼다. 당사 앞에는 천막을 설치해 농성에 들어갔다. 천막에는 ‘가결의원 체포하라’ ‘이제는 항쟁이다’ ‘조작감사 조작수사 중단하라’ 문구 붙어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일부 지지자들은 민주당사로 찾아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너희가 사람이냐″고 항의했다. 이찬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일부 지지자들은 민주당사로 찾아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너희가 사람이냐″고 항의했다. 이찬규 기자

오후 7시부터는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와 민주당 당사 앞으로 나눠 야간집회가 진행됐다. 당사 앞 집회 무대에 선 한 중년 여성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언급하면서 학살을 주장하는 과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이낙연, 박광온은 광주처럼 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두환 정권이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한 것을 빗대서 말한 것이었다. 이후 무대에 선 한 남성은 “이번 사건은 제2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이다”며 “이 대표가 구속되더라도 옥중 공천해서 총선 승리하자”고 밝혔다. “사실이 아니든 이 대표를 비판한 사람들을 수박으로 몰아서 내쫓아버리자”는 이야기도 나와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기도 했다.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촛불행동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9.21/뉴스1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촛불행동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9.21/뉴스1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에서 진행된 집회에는 지지자들 200여명이 두 개 차로를 점거하고 집회를 이어 갔다. 지지자들의 한손에는 LED촛불이, 다른 한 손에는 “탄핵 윤석열”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이들은 “수박을 깨뜨리자” “박살내자” 등 문구를 외쳤다.

일부 지지자들은 인근 편의점 앞에 모여 캔맥주를 손에 들고 “이럴 수가 있느냐” “민주당 내에서 배신 당했다”고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이들은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다는 일부 의원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거친 욕설을 이어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과 비슷한 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졌다”며 “민주적 의사표현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는 지나친 팬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쪽 집회는 오후 8시 20분쯤 모두 마무리 됐다. 통제됐던 국회의사당역 1·6번 출구는 비슷한 시기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한방향 통행이 우선 재개됐다. 지지자들은 “다음은 법원에서 만나자”며 이 대표의 영장실질심사 때 다시 집결할 것을 예고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