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한국 주가와 채권ㆍ원화값이 동반 하락했다. ‘트리플 약세’다. ‘매(통화 긴축)의 발톱’을 거두지 않는 미국 통화 정책 여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달은 금리 동결을 택했지만, 연내 추가 금리 인상 등 5%를 웃도는 고금리가 한동안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국내 금융시장에 반영된 것이다.
이날 코스피(2514.97)는 전날보다 1.75% 하락하며 2510선을 간신히 지켰다. 올해 가장 높았던 지난달 초(2667.07)와 비교하면 5.7% 급락했다. 코스피 하락세를 이끈 건 기관(-7211억원)과 외국인 투자자(-669억원)의 ‘팔자’ 행진이었다. 이날 개인투자자가 홀로 7672억원치 순매수에 나섰지만, 기관과 외국인투자자의 동반 매도세(7880억원)를 막진 못했다.
시가총액(시총) 상위 종목도 일제히 파란불(하락세)을 켰다. 시총 상위 10개 종목(우선주 제외) 가운데 LG화학(-4.72%)과 삼성SDI(-4.44%) 주가는 하루 사이 4% 이상 떨어졌다.
코스닥의 낙폭은 더 컸다. 코스닥은 2.5% 급락하며 860.68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860선까지 하락한 건 지난 7월 10일(860.35) 이후 두 달 반 만이다.
주식뿐 아니라 채권과 원화값도 동반 하락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68%포인트 상승한(채권값 하락) 연 4.031%에 거래를 마쳤다. 연중 최고 수치로,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4% 선을 돌파했다.
원화값은 수퍼달러(달러 강세)에 장중 달러당 1342원 선까지 미끄러졌다. 장 막판 소폭 상승해 전날보다 달러당 9.6원 내린(환율 상승) 1339.7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원화값은 지난 8월 23일(달러당 1339.7원) 이후 한 달여 만에 가장 낮다.
국내 금융 시장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건 ‘예상보다 매파적’이었던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회의 결과가 공개되면서다. 20일(현지시간) Fed는 이달 금리 인상은 쉬어가지만(동결), 추가 인상 가능성은 열어뒀다. Fed가 이날 공개한 위원들의 금리 전망(점도표)에서 연말 기준금리의 중간값을 5.6%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연 5.25~5.5%)를 고려하면 연내 한차례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내년 최종 금리 전망이다. Fed는 내년 금리 수준을 5.1%로 지난 6월(4.6%)보다 0.5%포인트 높였다. 기존엔 내년 기준금리가 0.25%포인트씩 적어도 4번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2회로 줄며 인하 속도가 현저하게 둔화한 셈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상반기 (미국의) 금리 인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며 “이번 FOMC는 5%대 고금리 시대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해석했다.
고금리 장기화 우려에 먼저 영향을 받은 건 미국 시장이다. 20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지수는 전날보다 1.53% 내린 1만3469.13으로 장을 마감했다. 다우존스(-0.22%)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0.94%) 도 하락했다. 미국 국채가격도 급락(금리 상승)했다. 이날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2007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연 4.4% 선을 넘어섰다.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매파적 색채’를 띤 이번 FOMC 결과는 당분간 국내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불쏘시개는 고금리 장기화 우려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기준금리가) 5%를 웃도는 고금리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반영됐다”면서 “고금리 환경이 지속하면 국내에서도 기업이나 가계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경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소연 신영증권 투자전략부장은 “달러 강세로 원화가치가 달러당 1340원 선 아래로 밀려나면 본격적인 외국인투자자의 한국 증시의 이탈이 나타날 수 있다”며 “당분간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여파는 국내 주식시장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시장 흐름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