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기도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시각장애인 안내견’ 글씨가 새겨진 노란 조끼를 입은 강아지들을 바라보며 함께 울고 웃었다. 이날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가 문을 연 지 30주년 되는 날. 그동안 수많은 시각장애인의 눈과 발이 돼 준 ‘천사견’ 래브라도 리트리버 안내견들이 주인공이었다.
기념식에는 본격적인 훈련을 받기 전까지 어린 강아지를 맡아 키운 봉사자들(퍼피워커), 안내견과 새 삶을 사는 시각장애인들(파트너), 소임을 다 하고 은퇴한 안내견을 입양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삼성 안내견 ‘조이’와 국회를 누비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배진교 정의당 의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등도 참석했다.
분양식에선 자식처럼 키운 안내견을 시각장애인 곁으로 떠나보내는 봉사자들이 아쉽고 자랑스러운 마음에 눈물을 훔쳤다. 이재용 회장과 홍라희 전 관장은 막 태어난 작은 강아지가 정든 봉사자들의 손을 떠나 2년에 걸친 훈련과정을 거쳐 시각장애인 ‘가족’으로 활동하는 영상을 시종일관 지켜봤다. 두 사람이 추도식 등 가족행사가 아닌 회사 공식 행사에 함께 참석한 건 2016년 6월 호암상 기념 음악회 이후 7년 만이다. 홍 전 관장은 초창기 어려움을 딛고 손수 사업을 챙기던 남편의 생전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안내견학교는 1993년 9월 고(故) 이건희 회장의 뜻으로 만들어졌다. 이 선대회장은 에세이집 『작은 것들과의 대화』에서 “일부에서는 사람도 못 먹고 사는 판에 개가 다 무어야, 하는 공공연한 비난의 소리를 내기도 했다. 비록 바보라는 비난을 듣고 있지만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가 옳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동안 모두 280마리의 안내견이 배출됐고, 현재 국내에서 76마리가 활동하고 있다. 홍 전 관장은 “회장님(이 선대회장)께서 살아계실 때 정말 관심이 많으셨다. 오늘 행사를 보셨으면 더 좋아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도 김예지 의원에게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조이는 어디 있나요?”라고 밝게 묻기도 했다.
지난 30년간 자원봉사 가정만 2000여 곳에 이르고, 훈련사들은 매년 250일을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약 76만㎞)한 것보다 훨씬 긴 81만㎞를 안내견과 걸으며 훈련했다. 이 선대회장은 이를 두고 “한 마리 안내견이 성장하기까지 수천만, 수억원의 돈으로도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애정의 크기로 퍼피워킹을 해 주는 자원 봉사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 그 노력을 먹고 자라는 한 송이 국화, 그게 안내견이다”라고 했다.
세계안내견협회(IGDF)는 1999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정회원으로 받아들였고 일본·대만 등지에서 더 나은 훈련법을 배우려고 이곳을 방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