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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양날의 칼’ 대통령의 이념 전쟁

중앙일보

입력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국정 이념을 반복 강조해 왔다.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그 세력은 늘 민주주의·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해…”(광복절), “공산 전체주의의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8월 29일 민주평통), “이념적으로 극과 극이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장관들이 적극적으로 싸워라”(29일 국무회의),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이념” “1 더하기 1을 100이라 하는 세력들하고는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다”(8월 30일 여당 연찬회).

‘공산전체’ ‘반국가세력’ 잇단 비판
“확고한 자유민주 체제” 선의겠지만
자칫 ‘자유 위축’ 가져올 위험 공존
헌법과 민생, 이념 논쟁 잣대 삼기를

 놀랍고 느닷없다는 일감(一感)이 자연스럽다. 가장 정보 많고 생각 많을 대통령의 말인지라 그 전후 맥락이 궁금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이념에 조언·상담 역할을 해온 한 측근에게 물어봤다.

 -톤이 강하다. “윤 대통령이 숙독한 책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 등)다. 같은 언어, 핏줄인데 한국은 왜 세계적 성공을, 북한은 비참한 실패로 갔는가. 바로 제도·체제 차이다. 제도를 선택한 게 이념이다. 왠 뜬금없는 이념 타령이냐 하겠지만 민생경제를 위해서라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작동해야 하고, 올바른 이념이 확고해져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번영·빈곤의 관건은 지리·문화적 요인이나 무지(無知)의 수준이 아니라 경제제도가 착취적이냐, (사유재산, 공평한 법체계처럼) 포용적이냐의 차이라고 강조한다.

 -오랜만의 ‘공산전체주의’ 단어다. “당연히 북한이다. 가짜 민주주의인 북·러·중을 포괄하지 않겠는가.”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은. “더불어민주당의 뿌리는 한민당 아닌가. 한민당은 그래도 반공·친미 노선을 견지했다. 김성수·송진우·신익희·조병옥 선생들을 보라. 그러나 언제부터 민주당은 변질돼 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무리한 ‘종전선언’ 추진이 대표적이다. 종전이 선언되면 유사시 한반도의 병참 보급선인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 등은 존립근거가 없어진다. 문 정부는 독일·덴마크의 유엔사 참여, 역할 확대 요청도 거부했다. 유엔사를 불편해 한 탓이다.”

 -여당, 장관들엔 왜 싸우라 주문하나.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전문성·과학성만 갖고는 국정이 안 된다’고 했다. 지금 여권은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려는 보신주의가 팽배하다. 용산 주변에선 ‘전투적 자유주의’가 권력 이너서클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인간적으론 친해도 가치가 맞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다.”

 - 그게 총선 공천 기준도 되나. “정당도 동지(同志)라 하지 않는가. 국민의힘이 과연 이 같은 핵심 이념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해낼 가치집단인지…. 윤 대통령은  확신이 없다. 총선에선 ‘가치에 대한 헌신’도 고려되지 않을까 싶다.”

 -도움이 될까. “보수 내에서도 헷갈리는 건 맞다. 홍범도 건도 긁어부스럼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거북하다고 이리저리 피하는 건 대통령 스타일이 아니다. 마이너스라도 바로잡을 건 바로잡는다는 고집이 강하다.”

 보수우파야 박수칠 일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맨 앞인 십자군식 이념 전쟁이란 양날의 칼이다. 살아 있는 최고권력이 ‘공산전체주의 추종 세력’ ‘반(反)국가’를 단정하는 순간, 앞의 모든 중간지대는 사라진다. 생각과 영혼을 명확히 이분하기엔 세상도 너무 복잡해졌다. 그러니 이념이란 바둑의 정석처럼 “열심히 공부한 뒤 다 잊어버려야 최선”일 수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엔 과거 ‘색깔론’ 트라우마도 잠복돼 있다. 정부나 정책을 감시·비판해야 할 야권과 언론 등의 심리적 위축도 불가피하다. 행여 검경 등 사정기관까지 ‘전투적’으로 대통령을 따라간다면 불안, 갈등의 확산 역시 걱정을 피할 길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지키자는 애초의 ‘선의’가 거꾸로 자유를 제약하며 길을 잃을 위험들이다.

 우리 공동체의 합의된 이념은 이미 헌법에 잘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바로 자유·민주·공화다.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려고 국민이 주인인 민주를 택했다. 개인의 자유들이란 늘 충돌하니 ‘다수의 지배’인 민주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자유와 민주는 늘 싸운다. 그래서 공동선(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자율이 조화를 이루도록 할 시민적 덕성, 갈등의 조율과 통합, 즉 상생공존을 지향하는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깔았다. 그러니 이념을 다투려면 헌법의 잣대로 충분할 터다. ‘헌법 가치의 수호냐 반헌법이냐.’

 측근 취재 하루 뒤 “대통령의 직접 워딩”이라며 그가 세 문장을 전해 왔다. “이념 발언은 다 잘먹고 잘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뚜렷해지지 않으면 잘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민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전제로 국가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한번 명확히 하고 가자는 게 의도였다.” 다행이다. ‘잘먹고 잘사는’ 민생. 그게 그 모든 이념이란 것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 아니겠는가.

글 = 최훈 주필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