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안보는 보수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진 진보정부에서 (보수정부보다) 안보 성적도, 경제 성적도 월등 좋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이 서울을 찾은 건 지난해 5월 퇴임 후 처음이다. 이날 행사에는 이낙연ㆍ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임종석ㆍ노영민ㆍ유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문재인 정부 인사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친문(親文)계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9ㆍ19 평양공동선언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한 선언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인사말에서 “평화가 경제”라고 강조하며 “김영삼 정부부터 지금의 윤석열 정부까지 역대 정부를 거시적으로 비교해보면 (남북 간 대화) 이어달리기로 남북관계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시기의 경제성적이 그렇지 않았던 시기보다 항상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 규모, 즉 GDP가 세계 10위권 안으로 진입한 시기는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뿐”이라며 “지난해 우리 경제규모는 세계 13위를 기록해 10위권에서 밀려났다”고 지적했다. 또한 “1인당 국민소득을 봐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기간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반면 이어달리기가 중단되었던 정부 기간에는 국민소득이 정체되거나 심지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현 정부와 전 정부의 경제지표를 비교했다. 문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1년에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000불을 넘었는데, 지난해 3만2000불 대로 국민소득이 떨어졌다”며 “그 이유를 환율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환율이 높아졌다는 것 자체가 우리 경제에 대한 평가가 그만큼 나빠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지수를 거론하며 “그 지수가 가장 낮았던 시기도 노무현ㆍ문재인 정부 때였다. 우리 경제의 신인도가 가장 높았다는 뜻”이라며 “지난해 CDS 프리미엄 지수가 다시 큰 폭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최근 여권에서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을 “방만재정”, “분식회계” 등으로 비판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정면 반박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이전 2년 동안 사상 최대의 재정흑자를 기록한 바 있고, 적자재정은 다른 모든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기간 동안 국민 안전과 민생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며 “오히려 재정적자는 현 정부에서 더욱 커졌는데, 적자 원인도 경기부진으로 인한 세수감소와 부자감세 때문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언제 그런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파탄 난 지금의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착잡하기 짝이 없다”며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금 남북관계가 매우 위태롭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 더해 최근의 외교 행보까지 한반도 위기를 키우고 있다”며 “급기야는 정부ㆍ여당에서 군사합의를 폐기해야한다거나 폐기를 검토해야 하다는 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9ㆍ19합의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로 남북 간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15일 이 합의를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다시 파탄을 맞고 있는 지금도 남북군사합의는 남북 간의 군사충돌을 막는 최후의 안전핀 역할을 하고 있다”며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한다는 것은 최후의 안전핀을 제거하는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文, 李에게 “기운 차려 싸우시라”=문 전 대통령은 기념식 참석에 앞서 이날 오후 3시쯤 단식 20일 째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입원 중인 녹색병원을 찾아 23분 가량 이 대표를 병문안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단식에 대해 위로도 하고 만류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오게 됐다. 이 대표는 이제 혼자의 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으니 빨리 단식을 중단하고 다시 활동하셔야 된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는 “끝없이 떨어지는 나락같다. 세상이 망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단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런 걸음까지 하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답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