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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정은이 우주기지 갈 때, 北경제팀은 따로 움직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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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8일 "김정은 동지가 러시아 연방에 대한 공식 친선방문 일정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17일 블라디보스토크시를 출발했다"라고 전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러시아 연해주 아르툠1 기차역에서 러시아측 인사들의 배웅을 받는 모습.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8일 "김정은 동지가 러시아 연방에 대한 공식 친선방문 일정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17일 블라디보스토크시를 출발했다"라고 전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러시아 연해주 아르툠1 기차역에서 러시아측 인사들의 배웅을 받는 모습.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박 6일 간의 방러 일정을 마친 가운데 김정은의 군사협력 관련 일정과 별개로 본격적인 경제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당국자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된 것으로 18일 파악됐다. 러시아와의 협력 분야를 전방위적으로 넓혀서 군사 기술의 미진함뿐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타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러시아 현지 인사의 전언을 바탕으로 "북한이 김정은의 방러 기간 중 팀을 두 개로 나눴다""군사무기 조달팀은 김정은을 수행해 기차로 이동했고, 경제팀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EF)에 참석해 러시아 당국과 경제협력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북·러 양국 간 무기거래를 축으로 하는 군사협력에 방점을 둔 김정은의 현지시찰을 수행한 팀과 별도의 '경제팀'이 움직였다는 설명이다. 정부 당국도 관련 사안을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4년 봄 안토노프(AN)-148로 추정되는 기종의 전용기에서 내리는 모습. 항공기 항로 추적사이트 '플라이트 레이더24'에 따르면 지난 12일과 16일 각각 평양에서 출발한 고려항공 소속 AN-148 기종의 여객기가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4년 봄 안토노프(AN)-148로 추정되는 기종의 전용기에서 내리는 모습. 항공기 항로 추적사이트 '플라이트 레이더24'에 따르면 지난 12일과 16일 각각 평양에서 출발한 고려항공 소속 AN-148 기종의 여객기가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김정은이 북한 내에서 현지지도 등에 활용했던 고려항공 소속 여객기가 러시아로 이동한 데 대한 언급도 있었다. 소식통은 "고려항공 소속인 우크라이나 안토노프사의 AN-148이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간 것도 경제 분야 논의에 참석한 인사들과 연관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항공기 항로 추적사이트 '플라이트 레이더24'에 따르면 지난 12일과 16일 각각 평양발 고려항공 여객기 1대가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해당 항공기가 어떤 목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경제 관련 팀을 별도로 파견한 것이 사실이라면 관련 인원의 이동과 연관시킬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북·러 양국은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지역에서 농업특구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며, 나진-하산 프로젝트 재개와 관광·문화교류 사업 등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농업은 북한 스스로도 '절박한 과업'이라고 밝힐 정도로 김정은의 정책적 우선순위에 올라있는 문제다. 이 때문에 곡물·비료 지원은 물론 북한 노동자들을 파견하는 농업특구를 비롯, 양국 간 농업 협력사업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아르니카 생물사료합성공장을 참관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아르니카 생물사료합성공장을 참관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특히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양국의 공통 관심사 중 하나다. 러시아 입장에선 자국의 풍부한 자원, 곡물 등을 수출할 수 있는 부동항을 확보할 수 있고, 북한 입장에서도 나진항 사용료와 화물 중개료를 받는 것은 물론 극동지역에서 이뤄질 경제·무역 협력의 교두보로 발돋움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2001년 북·러 정상 간 합의에 따라 시작된 해당 프로젝트는 북한 나진과 연해주 남부의 하산을 잇는 철도 54㎞를 개·보수해 나진항을 러시아의 수출용 석탄의 경유지로 이용하는 사업이다. 북·러 양국에 한국(포스코·코레일·현대상선 컨소시엄)까지 참여하는 3자 사업으로 추진됐으나, 북한의 2016년 1월 4차 핵실험으로 중단됐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극동 개발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요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제 대상에선 제외됐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한·미 정부의 대북 독자제재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한 미국·EU 등의 대러제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제재를 무시하고 있는 양국 간 논의가 진전된다면 러시아의 석탄은 물론 각종 수출품을 남미를 비롯한 사회주의 우호국가로 보내는 루트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러시아 자연부원생태학(천연자연부) 장관과 연해주 행정장관이 마련한 연회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러시아 자연부원생태학(천연자연부) 장관과 연해주 행정장관이 마련한 연회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러시아측 관료들도 북·러 양국이 경제를 비롯한 전방위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며 구체적으로 소개했다.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천연자원생태부 장관은 지난 17일 김정은에 대한 환송행사 직후 자신의 텔레그램을 통해 북한 측과 이번 김정은의 방북기간 동안 추가 곡물 공급,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재개, 정기 항공 노선 재취항, 신두만강대교 건설 협상 재개, 교육 및 문화 교류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도 같은 날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러 양국이 이번 김정은 방러 기간에 논의한 사안을 설명했다. 그는 김정은이 "기차에서 수력발전 분야의 협력에 대해 언급했다"며 "몇 가지 구체적인 질문을 했고, 평양으로 돌아가면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에 식량을 원조할 준비가 됐다고 전달했으나, 북한 측이 원치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올레그 코제먄코 프리모르스키주 주지사가 김정은에게 드론 6대와 방탄복 등 군사용품을 선물한 것을 두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위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드론을 운용하는 러시아의 실전 기술이 북한에 유입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라며 "러시아가 안보리 제재를 무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18일 "대북 드론 지원의 경우 북한과의 모든 무기 거래, 북한에 대한 모든 산업용 기계류 및 운송수단 등 금수품의 직·간접 제공을 금지하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을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또 "정부는 안보리 결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며 우리의 안보를 중대하게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들과 관련 공조를 강화하면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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