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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밀어내자" 반도체 올인?…인도 뜻밖의 전략은 '장난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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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장난감 산업을 앞세워 '중국 밀어내기'에 나섰다. 중국을 대신하는 '세계의 공장'이 되려면 첨단산업 육성뿐 아니라 장난감과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토이코노미(Toyeconomy, 장난감+경제)'의 실현을 위해 인도 정부는 관세 장벽을 높여 외국산 장난감의 수입을 막는 한편 자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크게 늘리고, 전국 곳곳에 관련 클러스터를 짓고 있다.

일간 더 타임스오브인디아와 인도 외국인투자촉진기구 인베스트 인디아 등에 따르면, 인도 고속도로산업개발청(YEIDA)은 지난 3일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있는 산업도시 노이다에 축구장 53개(43만㎡)에 달하는 '장난감 공원'(Toy Park)을 짓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곳은 제품 생산과 사업화, 수출을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장난감 복합산업단지다. 내년에 완공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다는 목표다. 장난감 공원에 입주하는 기업들은 모디 정부가 밀고 있는 PLI(생산연계인센티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PLI는 인도 내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매출 증가분에 비례해 4~6%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지난 2018년부터 미국 등 세계 시장으로 진출한 인도 장난감 회사 '모디 토이스'(Modi Toys)의 제품들. 인도 정통 복식과 인도 문화를 상징하는 동물인 코끼리 등을 형상화한 인형이 이 회사의 주력 상품이다. 모디 토이스 홈페이지

지난 2018년부터 미국 등 세계 시장으로 진출한 인도 장난감 회사 '모디 토이스'(Modi Toys)의 제품들. 인도 정통 복식과 인도 문화를 상징하는 동물인 코끼리 등을 형상화한 인형이 이 회사의 주력 상품이다. 모디 토이스 홈페이지

인도 코팔 지역에 조성 중인 장난감 제조 클러스터의 조감도. 에쿠스(Aequs) 홈페이지

인도 코팔 지역에 조성 중인 장난감 제조 클러스터의 조감도. 에쿠스(Aequs) 홈페이지

인도 정부가 지금까지 철강·전자·의료기기·제약·통신 등 주로 하이테크 산업에 한정됐던 보조금 대상을 장난감 산업 등 전통적인 제조업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날 장난감 공원 설립 계획을 밝히면서 쿠바 사가 YEIDA 청장은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인도는 향후 장난감 생산 분야에서 중국을 넘어설 것이며, 세계 시장 지배력을 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뿐 아니다.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 코팔에도 항공 부품 제조기업인 에쿠스(Aequs)의 주도로 대규모 장난감 제조 공장이 건립 중이다. 인도의 경제지 더이코노믹타임스(ET)는 "아이폰을 생산하는 팍스콘에 비견될 정도로 장난감 생산의 허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 정부는 이미 착공에 들어간 곳을 포함해 전국 거점 지역 60곳에 장난감 생산 클러스터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하이테크 '외길' → '투 트랙' 전략 선회

정부 차원에서 장난감 산업 육성에 힘을 쏟는 데엔 모디 정부의 '전략 수정'이 반영됐다고 현지 매체들은 지적했다. 2014년 출범 당시 모디 정부는 2022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제조업에서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현재로선 목표 달성에 실패한 상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도 GDP 중 제조업 비중은 지난 2018년 15%를 찍은 후 이후 4년 동안 13%, 14%대로 내려앉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디 정부는 전자·통신·방위·첨단섬유 등 하이테크 산업에 '올인(All-In)'하는 전략에서 벗어나 장난감 산업과 같은 전통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병행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인구 대국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 기존의 노동집약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해 경제 발전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김미수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HK 교수는 "인도가 중국을 대체하는 반도체 제조국으로 거듭나겠다며 드라이브를 거는 동시에 노동집약적 산업에도 적극적인 공세를 벌이는, 일종의 '투 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난감·섬유·신발 등과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이 "인도의 엄청난 인적 자원을 '일하게' 하면 금방 중국을 넘어설 수 있는 분야가 될 수 있다는 (인도 정부의) 판단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아울러 장난감이 인도 역사와 문화, 생활 양식 등을 전파하는 '문화 전도사' 역할을 한다는 점도 토이코노미의 매력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2018년부터 미국 등 세계 각국으로 진출한 인도 대표 장난감 회사 '모디 토이스'(Modi Toys)는 인도 정통 복식과 인도 문화를 상징하는 동물인 코끼리 등을 형상화한 제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은 세계 장난감 시장 점유율 59.2%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인도의 점유율은 약 0.5% 정도에 그쳤다. 당장은 '하늘과 땅' 수준의 격차이지만, 모디 정부는 자국 장난감 산업의 성장을 위해 파격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알라하바드 시내 길거리에 인도산 장난감들이 울타리에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알라하바드 시내 길거리에 인도산 장난감들이 울타리에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대표적인 게 관세 장벽이다. 인도는 지난해 장난감 수입 관세를 종전 20%에서 60%로 올렸다. 이 결과 지난해 중국 등에서 인도로 수입된 장난감이 코로나 19 직전인 2019년에 비해 75%가량 줄었다. 이어 올 1월 수입 관세를 70%로 재차 인상했다. 인베스트 인디아는 정부의 강력한 토이코노미 드라이브가 결실을 거둔다면 2028년까지 연평균 12%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 대국 장점 적극 활용"

현지 매체들은 장난감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일단 14억명에 이르는 인구 덕에 내수 시장이 크다. 게다가 완구류의 주된 소비자인 0~14세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26.6%)도 타국에 비해 큰 편이다. 인도는 세계 2위의 폴리에스테르 섬유 생산국으로 봉제 인형 등에 필요한 원자재도 풍부하다. 지난해 UAE(아랍에미리트)와 포괄적 경제협력 협정을 체결하는 등 자국산 제품의 수출 판로도 한층 확대하고 있다. 장난감 등 특정 노동집약형 산업에서는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100% 허용해 인도에 원활하게 투자금이 쏠리게 하는 환경을 구축한 것도 이점으로 꼽힌다.

모디 정부는 특히 장난감 같은 노동집약형 산업의 활성화가 유휴 인력을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데 도움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YEIDA가 착공한 노이다 장난감 공원의 경우 최대 6000명의 고용 효과가 창출될 거란 분석이다.

현지에선 모디의 토이코노미 드라이브엔 정치적인 고려도 반영됐다는 설명도 나온다.하이테크 위주 성장에 불만을 품고 있던 노동집약 산업의 기업·종사자 및 신규 취업자로부터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면, 내년 4월 총선에서 3연임에 도전하는 모디 총리에게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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