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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문화재 ‘테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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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2015년 중동 무장 테러단체가 고대 유물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문화재와 예술품을 존중하는 서양인의 감수성을 공격한 사건이었다.

이들이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주 전략적이었다. 금전적 이익을 얻지 못할 예술품이나 기념물만 골라서 파손했다. 그리고 오히려 대규모 문화재 불법거래를 주관해 테러기금을 모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주민에게 도굴 작업을 시켜 수집한 유물을 인터넷 혹은 암시장을 통해 체계적으로 판매한 것이다. 시리아 지역의 위성사진을 통해 구덩이투성이로 변한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말문이 막힌다.(사진)

아메리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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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베이에서 시리아에서 출토된 로마시대 동전을 검색하면 ‘사막의 녹청이 깃든’ 갓 발굴된 물품이 허다하다. 마우스 몇 번 찍으면 누구나 간단하게, 그리고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그 돈은 테러단체에 직접 기부하는 셈이 된다.

고고학 유물 불법거래는 테러단체들의 모금 여부를 떠나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불법 발굴작업이 고고학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영원히 파괴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리스나 이탈리아에서 발굴작업을 하면서 중요한 발견을 했거나 유물이 많은 층에 다다랐을 때는 꼭 작업 현장에 텐트를 치고 보초를 서야 했다. 안 그러면 다음 날 새벽에 여기저기 구멍이 파진 장면을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고학은 단지 박물관에 보관할 귀중품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층층이 기록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조사하면서 역사적인 퍼즐을 푸는 작업이다. 역사적 유물을 수집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한, 고고학은 비상식적인 환경 속에서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생존이 급급한 로컬 주민에게 문화재 보호를 강요하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발굴은 파괴’라는 사계(史界)의 논리도 항상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