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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 못 버리는 이유…은희경의 유머 담은 에세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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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은희경 신작 『또 못 버린 물건들』은 그가 사랑한 물건에 대한 에세이다. 물건을 정리하다 거기에 깃든 시간을 뒤돌아보며 썼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은희경 신작 『또 못 버린 물건들』은 그가 사랑한 물건에 대한 에세이다. 물건을 정리하다 거기에 깃든 시간을 뒤돌아보며 썼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은희경(64)이 12년 만에 산문집을 선보였다. 지난달 말 세상에 나온 『또 못 버린 물건들』(난다)이다. 웹진 채널예스에 반 년간 연재한 ‘은희경의 물건들’ 원고를 다듬어 단행본으로 만들었다.

『또 못 버린 물건들』

『또 못 버린 물건들』

소설가로는 28년 차이지만 에세이집을 낸 것은 2011년 『생각의 일요일들』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생각의 일요일들』은 트위터 글을 모은 책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이 에세이 데뷔작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스마트폰으로 직접 찍은 물건 사진도 함께 담았다. 첫 인세로 산 맥주잔 세트 등 일상의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갖고 싶은 대상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맥시멀리스트’의 정체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그는 책에서 “인간이 가진 단 하나의 고유성을 지켜주도록 돕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자신의 틀에 맞춰 타인을 재단하잖아요. 그게 폭력이 될 수 있거든요. 저는 모든 인간이 각기 다른 내면(고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고유성은 그가 30년 가까이 천착한 주제다. 2014년 그는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소설집을 내놨다. “비슷해 보이는 눈송이도 제각각 달라요.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어요. 그게 제 소설의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를 ‘휴머니스트’라고 불러야 할 텐데, 그에게는 ‘냉소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권위의식, 전체주의, 획일성을 비틀어 보는 주제 의식 때문이다. 그는 1990년대부터 개인을 주제로 글을 썼다. 참여문학이 주목받던 시절이었고, 여성 일탈에 관해 쓰면 “좀 더 진중한 주제를 다루는 게 좋겠다”는 핀잔을 듣던 시기였다. 그는 냉소주의자라는 평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의 전체주의에 대해선 여전히 냉소적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인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같이 어우러져 살자’는 주의예요. 단 나란히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 정도 연대가 좋다는 거죠. 고독의 연대라고 할까요. 리얼리스트가 연대하는 방식은 이 정도인 것 같아요.”

그는 새 장편을 준비 중이다. 인간의 몸에 대한 이야기다. 내년에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한다. “인간의 몸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성장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하기도 하죠. 결국엔 모든 몸이 소멸하게 되고요. 그 과정을 두루 담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재밌는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왜 소설을 읽어야 할지 묻자 은희경은 “핫하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냉소의 작가답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 많은 공감을 받는 것, 대중적인 것, 그런 것으로만 사회가 이뤄질 수 없어요. 소외된 것, 그늘진 것을 보는 시선도 있어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소설을 쓸 때의 원칙도 소개했다. “아는 것에 대해서만 편하게 씁니다. 편하게 쓴다고 해서 안이하게 쓴다는 뜻은 아니에요. 어깨에 힘을 빼고, 대작을 쓰려는 욕심을 버리고 쓰자는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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