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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징금 약한 탓…‘마약류 장사’ 업무정지된 병원 계속 영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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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21년 5월 경남경찰청은 펜타닐 성분이 들어간 진통제 패치를 불법 처방받고 유통한 10대 42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사진 경남경찰청]

2021년 5월 경남경찰청은 펜타닐 성분이 들어간 진통제 패치를 불법 처방받고 유통한 10대 42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사진 경남경찰청]

마약 사범들과 수사기관으로부터 ‘펜타닐의 성지(聖地)’로 불린 서울의 한 병원이 지난해 1년여간 마약류 취급과 관련한 업무정지 통보를 받았지만 과징금 1000여만원을 내고 진료를 이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S의원은 지난해 4월 성북구보건소로부터 ‘마약류 취급 업무정지(이하 업무정지)’ 13개월을 통보받았다. 마약류 취급 내용을 미보고하고, 업무 외 목적으로 마약류를 취급했다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S의원은 업무정지 대신 과징금 1170만원을 냈고, 이후 마약류 취급을 비롯한 통상적인 진료를 이어갔다.

S의원은 마약류 의약품인 펜타닐의 ‘성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마약류 불법 투약자들 사이에서 ‘S의원에 가면 펜타닐을 쉽게 타낼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S의원은 언론 등을 통해 펜타닐의 성지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2019년 한 해 동안 내원객 87명에게 578회에 걸쳐 펜타닐 성분이 든 진통제를 총 4220장 처방했다. 이듬해인 2020년에도 264명에게 763회에 걸쳐 6108장을 내줬다.

S의원을 방문해 펜타닐 등 마약류를 처방받은 뒤 의료 외 목적으로 투약하거나 불법 유통 등의 죄로 징역형(실형) 등 형사처벌을 받은 사건은 최소 7건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생활권이 대전 지역인 L씨는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서울에 있는 S의원을 찾아 총 72회에 걸쳐 “허리 통증이 심하다”는 거짓말을 하며 펜타닐 성분이 들어간 진통제 패치 484장을 타낸 혐의 등으로 지난 7월 징역 2년6개월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S의원은 과징금을 내며 업무정지를 피할 수 있었다. 현행 마약류관리법 46조는 “업무정지 처분을 갈음하여 2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시행령 15조에 따르면 업무정지 1일에 해당하는 과징금은 3만원이며 이를 ‘업무정지 13개월(390일)’에 적용하면 1170만원이 된다. 이와 관련해 성북구보건소 관계자는 “과징금을 내는 것으로 업무정지를 대신하겠다는 S의원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영업정지를 피해 간 S의원은 관련 기관의 단속·수사망이 좁혀오기 시작한 2021년 단 2명에게 2회에 걸쳐 펜타닐 11장을 처방하는 데 그쳤고, 지난해에는 펜타닐을 전혀 처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펜타닐 대신 식욕억제제에 들어가는 마약류인 펜터민 처방을 늘렸다. 2021년 26명에게 2734정을 처방했고, 지난해 28명에게 3184정을 내줬다. 보건 당국은 펜터민 처방 빈도가 늘어난 것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S의원과 같이 마약류 의약품의 공급처로 의심받는 병원들이 무거운 처벌을 피하는 사례가 반복되자 국회와 관련 기관 등에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 의원은 “마약류를 비정상적으로 처방함으로써 범죄에 동참한 의료기관과 의료인은 업무정지를 받거나, 이조차도 과징금으로 갈음해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며 “의료인에게도 엄격하게 법적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준호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은 “업무정지를 과징금으로 갈음할 수 없게 하는 등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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