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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인간에게 고유성 돌려주는 것"...은희경 12년 만의 신작 에세이

중앙일보

입력

199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은희경이 12년 만에 산문집을 선보였다. 지난달 말 세상에 나온 『또 못 버린 물건들』(난다)이다. 웹진 채널예스에 반 년간 연재한 ‘은희경의 물건들’ 원고를 다듬어 단행본으로 만들었다.

소설가 은희경이 지난 13일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은희경은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고유하고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은희경이 지난 13일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은희경은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고유하고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8년 차 작가지만 소설 아닌 에세이집을 펴낸 것은 2011년 『생각의 일요일들』에 이어 두 번째다. 은희경은 "『생각의 일요일들』은 트위터에 쓴 짧은 글을 모은 책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번 책이 에세이 데뷔작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이폰으로 직접 찍은 물건 사진 스물네 컷도 함께 담겼다. 작가가 된 뒤 처음 받은 인세로 산 맥주잔 세트 등 일상적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갖고 싶은 대상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은희경 신작 에세이 『또 못 버린 물건들』. 작가가 된 후 처음 받은 인세로 산 맥주잔 세트 등 그가 애착을 갖고 있는 물건에 대해 썼다. 사진 난다

은희경 신작 에세이 『또 못 버린 물건들』. 작가가 된 후 처음 받은 인세로 산 맥주잔 세트 등 그가 애착을 갖고 있는 물건에 대해 썼다. 사진 난다

은희경은 책에서 "인간이 가진 단 하나의 고유성을 지켜주도록 돕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자신의 틀에 맞춰 타인을 재단하잖아요. 그게 폭력이 될 수 있거든요. 저는 모든 인간이 각기 다른 내면(고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고유성은 은희경이 30년 가까이 천착해 온 주제다. 2014년 그는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라는 길고 특이한 제목의 소설집을 내놨다. "비슷해 보이는 눈송이도 제각각 모습이 달라요.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어요. 전부가 고유하죠. 그게 계속해서 반복되는 제 소설의 주제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를 '휴머니스트'라고 불러야 맞겠지만, 그에게는 늘 '냉소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권위 의식, 전체주의, 획일적인 사회를 비틀어 보는 그의 주제 의식 때문이다. 그는 90년대부터 '개인'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사회 참여적 문학이 주목받던 시절이었고, 여성 일탈에 대한 글을 쓰면 "그런 가벼운 내용 말고 좀 더 진중한 주제를 다루는 게 좋겠다"는 핀잔을 듣던 시기였다.

냉소주의자라는 세간의 평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회의 전체주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인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저는 '같이 어우러져 살자'는 주의예요. 단 나란히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 정도의 연대가 좋다는 거죠. '고독의 연대'라고 할까요. 리얼리스트가 연대하는 방식은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이마저도 냉소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요."

그에게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일까. "현실이 어렵다는 외침에 그치는 소설이 아니라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보여주는 소설"이란다. "관점을 제시하는 소설, 작가만의 고유한 발견이 있는 소설"이라고 덧붙였다.

은희경은 새 장편을 준비 중이다. 인간의 몸에 대한 이야기다. 내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를 시작한다. "인간의 몸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성장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하기도 하죠. 결국엔 모든 몸이 소멸하게 되고요. 그 과정을 두루 담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재밌는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소설을 왜 읽어야 하냐고 묻자 은희경은 "핫하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에 읽어야 한다."고 했다. 냉소의 작가다운 답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 많은 공감을 받는 것, 대중적인 것, 그런 것으로만 사회가 이뤄질 수 없어요. 소외된 것, 그늘진 것을 보는 시선도 있어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학은 소외된 곳에 시선을 주기 마련이거든요."

소설 쓸 때 원칙도 살짝 소개했다. "아는 것에 대해서만 편하게 쓴다"는 것. "편하게 쓴다고 해서 안이하게 쓴다는 뜻은 아니에요. 어깨에 힘을 빼고, 대작을 쓰려는 욕심을 버리고 쓰자는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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