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 함 해보입시더"…'전설의 무쇠팔' 89세 노모는 매주 달려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故) 최동원 선수의 12주기 추모 행사가 지난 12일 부산 사직구장 최동원동상 앞에서 열려 어머니 김정자 여사가 헌화를 한 뒤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고(故) 최동원 선수의 12주기 추모 행사가 지난 12일 부산 사직구장 최동원동상 앞에서 열려 어머니 김정자 여사가 헌화를 한 뒤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2일 부산 동래구 사직종합운동장사직야구장 앞. 역투하는 고(故) 최동원(1958~2011) 선수의 모습으로 제작된 동상 앞에서 선후배 야구인이 묵념으로 그의 12주기를 추모했다. 최동원 야구교실 소속 유소년 등 야구 꿈나무들도 추모식을 찾아 롯데 자이언츠의 ‘레전드’ 최동원의 기량과 정신을 본받겠다고 다짐했다.

‘무쇠 팔’이 남긴 “마, 함 해보입시더” 

최동원은 구도(球都) 부산에서도 야구 명문으로 이름 높은 경남중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를 거쳐 1981년 당시 실업팀이던 롯데 투수로 뛰었다. 전기 리그와 한국시리즈에서 팀 우승을 이끌며 그해 신인상과 다승왕, MVP를 독식했다. 최고 시속 155㎞의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를 뿌리며 상대 타선을 잠재운 그의 강한 어깨는 ‘무쇠 팔’로 불렸다. 그해 캐나다 대륙간컵대회에서도 MVP를 거머쥔 최동원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했지만, 1982년 롯데자이언츠가 프로야구단으로 변경되자 이듬해 롯데에 입단했다.

고(故) 최동원 추모 다큐 '1984 최동원'에서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선수의 84년 당시 모습.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고(故) 최동원 추모 다큐 '1984 최동원'에서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선수의 84년 당시 모습. 사진 영화사 진, 엠앤씨에프

1984년엔 51경기에 출전해 14차례 완투하며 27승을 기록했다. 그해 삼성 라이온즈와 맞붙었던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는 4승 3패로 승리했는데, 최동원은 홀로 4승을 일구며 롯데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이때 그가 남겼던 “마, 함 해보입시더”란 말은 2030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한 캐치프레이즈로 여전히 시민 곁에 남아있다.

최동원은 1989년엔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연습생 최저 생계비나 선수들의 경조사비, 연금 같은 최소한의 복지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협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구단 측 강한 반발에 부딪혀 선수협 결성은 무산됐다. 이 일로 ‘괘씸죄’에 걸린 그는 친정팀 롯데에서 삼성으로 이적 당했다. 1990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그는 한화 2군 감독을 거쳐 KBO 경기감독위원 등을 지냈으나, 대장암으로 2011년 9월 14일 향년 53세로 별세했다.

“폐 끼칠까 봐”, 매주 아들 조형물 닦는 구순 노모

사직구장에 앞서 부산 최초의 야구 전용 경기장으로 쓰이던 부산 서구 구덕운동장 앞에도 최동원 조형물이 놓여있다. 서구는 2011년 10월 구덕운동장 앞 80㎡ 화단 위에 역투하는 최동원과 동료 포수였던 한문연 선수가 투구를 받아내는 모습을 구현했다. 홀로 4승을 일군 1984년도 한국시리즈 7차전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한 투구 장면을 담은 조형물이다.

최동원의 모친 김정자 여사가 부산 서구 구덕운동장 앞에 설치된 아들의 조형물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김 여사는 매주 월요일 서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뒤 이 조형물을 찾아 주변을 청소한다. 사진 최동원기념사업회

최동원의 모친 김정자 여사가 부산 서구 구덕운동장 앞에 설치된 아들의 조형물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김 여사는 매주 월요일 서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뒤 이 조형물을 찾아 주변을 청소한다. 사진 최동원기념사업회

최동원의 어머니 김정자(89) 여사는 매주 월요일이 되면 이곳을 찾아 주변을 청소하고 조형물을 헝겊으로 깨끗하게 닦는다. 김 여사는 19년 전부터 서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성인과 미성년 장애인을 대상으로 인지 및 사회적 관습 등 교육을 하는 봉사활동을 해왔다. 자택인 수영구 남천동에서 복지관까지는 시내버스로 굽은 산복도로를 따라 1시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다.

매주 월요일 봉사활동을 마치면 김 여사는 아들 조형물을 찾는다. 그는 “아들 모습을 보러 온 분들이 주변 쓰레기나 더러운 조형물 때문에 불편할까 봐 매주 청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형물 옆엔 1984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환호하는 최동원의 사진도 전시돼있다. 김 여사는 “구덕운동장은 학생 시절 아들의 경기가 자주 열리던 곳이다. 여전히 그때가 마음속에 남아있다”며 “(지금은 아들이) 고통 없는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직구장 앞 최동원 동상도 김 여사가 자주 찾던 곳이다. 매주 화~목요일 해운대구 반송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마치면 도시철도를 갈아타며 아들을 만나러 갔다. 척추협착증과 족저근막염 등 증세로 건강이 악화해 이전처럼 자주 가진 못하지만, 집에 앉아 있다가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울컥 올라올 때 김 여사는 사직구장으로 향한다.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스카우트 제의 받았던 최동원 기사. 1981년 8월 22일자 중앙일보 스포츠면 기사다. 중앙포토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스카우트 제의 받았던 최동원 기사. 1981년 8월 22일자 중앙일보 스포츠면 기사다. 중앙포토

그는 “아들의 동상을 어루만지고, 곁에 앉아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면 후련해진다”고 말했다. 아직도 야구복을 입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 아들인 것만 같아 먹먹해질 때가 많다고 한다. 김 여사는 “(세상을 뜬지) 10년이 지나도 아들을 기억해 추모하고, 내게 용기의 말씀을 주는 시민들께 늘 기운을 얻는다. 보답하는 마음으로 힘닿는 데까지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