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공급 부족 우려, WTI 배럴당 90달러 돌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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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호 02면

원유 공급 부족 우려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다시 돌파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의 감산 기조가 계속될 전망이라 국제유가가 더 오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배럴당 1.64달러(1.85%) 오른 90.1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가격이 배럴당 90달러를 넘은 것은 지난해 11월 4일(92.61달러) 이후 약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최근 90달러를 넘은 브렌트유 가격도 14일(현지시간) 배럴당 93.7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역시 지난해 11월 이후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국제유가가 다시 오른 이유는 공급 부족 우려 때문이다. 전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사우디와 러시아의 지속적인 감산에 “하반기에 상당한 원유 공급 부족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올해 4분기부터 하루 300만 배럴 이상의 공급 부족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런 공급 부족 규모는 10여 년 만에 최대다.

공급 부족 우려를 키운 것은 표면적으로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주도한 감산 정책이다. 사우디는 원래 지난달까지 예정돼 있던 하루 100만 배럴 감산을 올해 연말로 연장했다. 러시아도 사우디 발표에 맞춰 감산 기간을 올해 말로 늘려 잡았다. 하지만 이들 감산만으로 최근 국제유가 상승을 모두 설명할 순 없다. 감산 기간이 늘긴 했지만, 러시아는 감산 규모를 하루 50만 배럴에서 30만 배럴로 오히려 축소했다. 이 때문에 감산 기간 연장보다는 비(非)OPEC플러스(+) 국가의 감산 대응 능력 감소가 더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OPEC+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가 오히려 하락한 이유는 미국의 전략비축유 방출과 중국의 수요 둔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남은 전략비축유 보유량이 1983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추가 방출 여력이 없다는 전망이 나왔다. 오히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5월에 300만 배럴을 재매입해 전략비축유를 다시 채워 넣었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고금리·고물가 상황은 추가 유전 개발을 어렵게 해 공급 부족 우려를 더 키웠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이후 미국에서 새롭게 시추·완공되는 유정 수도 줄어들고 있고, 시추 후 미완공 유정(DUC)의 감소 또한 급격하지 않다”면서 “인건비와 금리가 상승해 투자비용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급의 키를 쥐고 있는 최대 산유국 사우디가 의도적 유가 띄우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유가 전망을 어둡게 한다. 사우디는 높은 원유 의존도를 탈피하기 위해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재원 마련을 위해 국제유가를 계속 높일 수밖에 없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 추산으로 사우디가 재정균형을 이루기 위한 국제유가는 배럴당 80.9달러다. ‘비전 2030 프로젝트’에 투입할 추가 재정수입을 위해서는 국제유가는 이보다 더 높아야 한다. 박 연구원은 “사우디로 대변되는 OPEC+의 감산 의지는 크고, 이를 방어할 비OPEC의 원유 증산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해당 추세가 2014년 이후 누적된 결과라는 점에서 유가는 장기적으로 상승 압력이 높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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