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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고졸 이중 벽 깼다…'김미영 팀장 잡는 김미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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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7호 16면

 ‘여성 칼잡이 1호’ 김미영 금감원 부원장

김미영 부원장·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금융사들이 고객 보호를 지속가능한 성장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김미영 부원장·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금융사들이 고객 보호를 지속가능한 성장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그녀는 독보적인 칼잡이였다. 검 쓰는 법을 알고, 매의 눈으로 상대의 허점을 꿰뚫었다. 금융지주 종합검사를 비롯해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개설, 세월호 사주 일가에 대한 부실 대출 등을 겨눈 그녀의 칼날은 날카로웠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지키기 위해’ 칼을 잡았다. 금융사기·불완전판매 등에 노출된 금융소비자를 위해서다. 김미영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의 얘기다. 그녀는 지난 5월 금융감독원 최초 내부출신 여성 부원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취임 후 첫 공식행사는 지난 6월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열린 은행·증권·보험·카드·저축은행 등 전 금융업권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 50여 명과의 간담회였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불완전판매 민원 등 금융산업의 소비자보호 수준이 소비자들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금융사를 잡는 군기반장이라기보단 지원군에 가까웠다. 함께 협력해 소비자보호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자칫 영업현장에서 뒷전으로 밀릴 수 있는 소비자보호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고, CCO들이 회사로 돌아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금감원이 든든한 백이 되줄 것임을 약속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취임 전부터 금융소비자보호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왔다”며 준비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

세월호 사주 부실 대출 조사 등 진두지휘

지금껏 그녀가 걸은 길은 ‘최초’의 개척사였다. 1985년 서울여상 졸업 후 한국은행에 들어갔다 1999년 금감원이 출범할 때 합류했다. 여성에겐 유독 ‘안 된다’는 것이 많았던 시대, 금감원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부원장까지 올라온 사람은 김 처장이 처음이다. 돌아보면 영광의 가시밭길이었다. 여성 최초로 금융사에 검사역으로 나가 ‘여성 칼잡이 1호’로 이름을 날렸고, 보이스피싱의 대명사인 (가짜) 김미영 팀장이 악명을 떨치던 시기엔 불법금융 대응을 맡아 ‘김미영 잡는 김미영’으로 유명세도 탔다. 그는 “별명인 ‘김미영 잡는 김미영’이나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갖고 금융피해 예방과 금융소비자보호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미영의 금소처’는 어디에 방점을 두나.
“금융소비자보호를 단순히 민원이나 분쟁을 처리하는 업무라고 봐서는 곤란하다. 근본적으로 민원이 발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모펀드 사태를 보자. 그때 금융사들이 과연 고객을 지속가능한 성장의 원천이라는 생각했다면 그렇게 판매했을까. 2021년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이 생겨 제도적인 틀은 갖춰졌다. 그러나 실제 실천과 인식까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영업 현장이나 상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수익 못지않게 고객 보호에 대해 먼저 고려하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해외 부동산펀드 부실 등 불완전판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민원이 발생하기 쉬운 상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융사들이 과연 그러한 상품을 팔 때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권유하고, 설명 등의 의무를 다했는가 하는 점이다. 위험은 무엇이고 그러함에도 투자할 것인지 분명하게 짚도록 교육하고, 판매 후에도 손실 위험을 수시로 안내할 수 있도록 금융사에 요청한 상태다.”
보이스피싱은 왜이리 근절되지 않나.  
“보이스피싱에 왜 자꾸 당하나 하는데,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한번은 고향의 친구가 택배를 보냈는데, 물건 도착이 늦어졌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택배 반송 문자가 왔다. 무심결에 클릭했더니 전화번호를 누르라고 뜨더라. 010까지 누르다가 아차 싶어 중지했다. 보이싱피싱 하면 연변 사투리로 ‘당황하셨어요?’ 이런 말투를 떠올리는데, 수법이 매우 정교해졌다. 반송문자를 잘못 클릭했다 악성 앱이 깔려 핸드폰이 먹통이 되고 4억원의 돈이 빠져나간 사례도 있고, 자금 조달이 시급한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허위 대출 광고도 기승을 부린다. ‘엄마, 나 핸드폰 액정 깨졌어’도 유명한데, 그런 상황을 당하면 엄마들은 사기 위험을 생각하기보다 ‘내 아이’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사기에 당할 수 있다. ‘3고’를 꼭 기억하자. 의심하고, 끊고, 확인하고.”
‘김미영 팀장’과 인연이 깊다.
“과거 ‘금감원 김미영 팀장이’라고 밝히면 전화가 끊기고, 메일이 스팸 처리되기도 했다. ‘검사국의 중수부’라 할 수 있는 기획검사국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 팀장이었다. 공교롭게도 가짜 김미영 팀장과 이름과 직책이 같았다. 이따금 ‘김미영, 아직도 팀장이냐’는 댓글도 올라오는데, 덕분에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각심을 한 번 일깨워줄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을 단속하는 불법금융대응단장까지 올라갔으니 이름 덕도 본 건 아닐까 싶다.”
‘여성 칼잡이 1호’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터무니없는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때만 해도 ‘여자가 검사를 나가면 금융사에서 어떻게 생각할까’를 걱정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1~2년 보류되다 시범케이스로, 은행 검사를 나갔던 초기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하루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직원이 ‘금감원이 자료 달라는데, 줬어?’ 하자, 다른 직원이 ‘중요한 건 빼고 넘겼다’고 하더라. 나중에 그 부서 자료는 다시 싹 보강해서 받았다. 여자니까, 금감원에서 나왔다고 생각을 안한 거다. 그런데 여성 검사역을 해보니, 여자에게 더 잘 맞는 일 같다. 꼼꼼하게 짚고 끊임없이 물어보는 일은 여자들이 더 잘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좌절했던 순간은 없었나.
“팀장이 되기까지 수차례 고배를 마셨다. 2006년 미국 통화감독청(OCC)에 1년 연수를 갔는데, 승진 심사에서 제외됐다. 그때 너무 속상해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다 그만두고 돌아가겠다고. 그때 ‘선배는 이미 우리 마음속의 팀장입니다’라는 후배들의 메시지에 마음을 다잡았다. 귀국 후에도 계속 승진 심사에서 떨어졌다. 여성, 상고 출신, 관료조직이라는 ‘3중’의 벽이라고 하더라. 2018년 자금세탁방지실이 생길 때 부국장을 건너뛰고 국장으로 바로 발탁 승진됐다. OCC에서 공부했던 분야가 바로 자금세탁방지였던 덕분이다. 그런데 이제 돌아보면 참 묘하다. 일찍 팀장을 달았다면, 오히려 임원까지는 못가고 그만두지 않았을까 싶다. 그땐 여성 리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부정적이었다.”

보이스피싱 수법 매우 정교, 나도 당할 뻔

김미영 부원장이 6일 금융사기 피해예방을 위한 홍보 행사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미영 부원장이 6일 금융사기 피해예방을 위한 홍보 행사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 리더로서의 고민은 무엇이었나. 화통하다는 평판이 있던데.
“팀장 심사를 앞두고 들은 얘기다. 면접 보러 가면, 남자들에게 여자 상사 밑에서 일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고. 업무는 열심히 하면 되겠지만, 팀장으로서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그 고민을 풀어준 것은 OCC의 한 여성 임원이다. 그녀가 복도를 지나가는데, 젊은 직원이 막 쫓아가서 어쩌고저쩌고 숨 가쁘게 하소연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리더십에 관한 사고를 다시 했다. 리더하면 카리스마를 떠올렸는데, 그 관계를 보면서 ‘아 누나가 있구나, 누나 같은 리더십을 가지면 좋겠다’ 생각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어렵겠지만, 술 잘 사주는 재미있는 누나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남녀 가리지 않고 편하게 대화하고, 으샤으샤 해서 성과를 내고. 화통하다고? 소리가 ‘기차 화통’ 같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하.”

김미영 부원장은 금감원의 현안과 그간 걸어온 길에 대해 얘기를 나눌 때는 한 치의 막힘이 없었지만,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살짝 당황하는 기색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여성들의 열 명 중 아홉 명은 꿈이 ‘현모양처’라고 답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전교 1·2등을 다투는 수재였지만, 오빠와 남동생이 있어 3남매의 대학 등록금이 버거운 부모는 그녀에게 취업을 권했고, 당시 한은은 가장 안정적이고 대우 받는 좋은 직장으로 꼽혔다. 스스로도 “몇 년 다니다가 결혼해 그만둘 줄 알았다”고 웃었다. 그녀는 앞으로도 원대한 목표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자세를 강조했다.

“부원장이 되고 나서 예전에 OCC에 보내줬던 선배가 ‘잘 될 줄 알았다’며 기뻐해줬다. 자질을 알아주는 좋은 선배를 만난 것이 큰 행운이었다. 사실 칼잡이로 이름을 날리려면, 우선 그런 현장에 나가야하지 않나. 여성 후배들에게도 다양한 직무경험을 쌓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앞으로 금융소비자보호와 관련된 목표를 지향점대로 완수하고, 후배들을 잘 살펴주고 끌어주는 일 잘했던 선배로 기억되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다.”

보이스피싱 당했는데, 4분 내에 계좌 지급 정지해 전액 돌려 받기도

김미영 부원장은 “보이스피싱 사고 후에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다”며 “사고 후 실수를 자책하기보다 신속하게 사후대처에 나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계좌 지급정지

금융회사나 금융감독원 콜센터(1332)로 지체 없이 피해사실을 신고해 계좌 지급 정지를 한다. 4분 안에 계좌지급 정지를 하여 전액 돌려받은 경우도 있다. 빠른 대처를 위해 주거래 금융회사의 콜센터 번호를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개인정보 노출등록

출처가 불분명한 인터넷 주소(URL)을 클릭해 개인정보가 노출되었다고 판단한 경우 금감원 홈페이지 ‘개인정보노출자 사고예방시스템’에 개인정보노출자로 등록한다.

내 계좌통합관리

오픈뱅킹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본인이 주로 거래하는 은행 외에는 오픈뱅킹 제한 서비스를 가입하는 것도 피해 예방법이다. 범죄자가 다른 은행 계좌를 통해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본인 명의로 개설된 계좌 또는 대출은 ‘계좌정보 통합관리서비스’에서 한 번에 확인이 가능하다.

휴대폰 명의도용 방지

최근 신분증 대신 본인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휴대폰이다. 거래하는 통신사 외 다른 통신사를 쓸 일이 없으면, 피해 이전에 다른 이동전화의 신규 개설을 차단하는 ‘가입제한 서비스’를 신청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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