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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철완의 마켓 나우

점점 더 한국 압박하는 중국 배터리 업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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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2010년대 초반, 다임러 AG(현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디터 제체 회장은 신생 중국 자동차 시장이 내연기관 자동차로 쏠리면 수송용 석유 수급 붕괴로 공멸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은 신에너지 자동차로 갔으면 좋겠다”고 에둘러 말했다.

2020년대 들어 중국에서는 순수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정책이 힘을 얻으며 ‘미래형 자동차 신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 중심에는 배터리에 기반을 둔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이 있었다. 지난달 독일 폭스바겐(VW)은 중국의 전기차 제조업체 샤오펑(Xpeng)에 7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5%를 인수하며 중국 시장을 겨냥한 2개 전략 차량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차들은 샤오팡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이용할 예정이다. 폭스바겐 계열인 아우디도 상하이자동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쓴다. 매출의 30%를 중국 시장에 의존하는 폭스바겐 그룹의 고육지책일 수도 있으나 상황이 간단치 않다.

마켓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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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오랜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이처럼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와 새로운 협업의 장을 열고 있다. 전통적 자동차 업체와 중국 자동차 제작사 간의 투자와 협업이 전기차 쪽으로 집중되면서 자동차 산업의 판도도 바뀌고 있다. 2020년대의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세계 1위 전기차 생산국, 세계 1위 리튬이온 이차전지 생산국이다. 특히 테슬라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기가 상하이’의 역할이 컸고, 일론 머스크도 BYD(비야디) 같은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를 경쟁자로 꼽는 상황이다. 중국 제조업이 없다면, 양질의 저가 이차전지도, 경쟁력 있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도 없으며, 제품을 내다 팔 큰 시장도 없는 상황이 왔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과 미국 전기차 제작사들은 종종 합자 소식을 내놓는다. ‘차량 전자화’ 시대에도 선진적 자동차 제조 기반으로 시장을 재석권할 수 있다고 믿었던 미국과 독일 등 유럽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사실상 패배를 시인했다. 또한 중국의 BYD는 안정적인 셀(cell) 비즈니스를 통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우리나라 전기차업체 KG모빌리티와 일본 도요타에 공급한다. 중국의 닝더스다이(寧德時代·CATL)가 배터리 사업 경쟁자로 우리나라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가 아니라 자국의 BYD를 더 경계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K 배터리’라는 마법 주문이 유행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직전 일본을 무시한 통신사같이 ‘중국 이차전지와 전기차는 바다를 건널 수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에서 이제는 빠져나올 때가 됐다. 시장 예측 실패로 밀려난 이차전지의 산업경쟁력을 다시 강화할 방안을 고민할 때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