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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위험한 건가"vs"애들 죽으면 책임지나" 비대면진료 공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나 약계가 안전성을 우려하는데, 비대면 진료가 정말 그렇게 위험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비대면 진료해서 아이들이 죽으면 민·형사 책임질 생각이 있으신 거죠?”(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14일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공청회’에서 날선 공방이 펼쳐졌다. 이날 공청회는 지난 6월부터 3개월간 시행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 대해 의·약계, 플랫폼 업계, 학계 전문가 등 각계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복지부는 그간 시범사업 과정에서 제기된 현장 민원을 고려해 개선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의료계 및 약계는 여전히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서비스 확대에 강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의료계 내에서도 입장차가 분출되는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 사이 좁히기 힘든 간극이 재차 드러났다.

복지부는 이날 공청회에서 현행 시범사업에서 비대면 초진이 가능한 환자 범위가 지나치게 좁게 설정돼있다는 등의 지적을 검토해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예외적인 초진 대상자를 섬·벽지(거주자)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 기준이 너무 협소하다는 민원이 있었다”며 “의료 접근성이라는 관점에서 개선이 필요한지 논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행 시범사업 틀 안에서는 비대면 초진이 ‘보험료 경감 고시에 따른 섬·벽지 거주자’ 등에 한해서만 가능한데, 이같은 분류에 따르면 실제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에 살더라도 비대면진료 이용이 어려운 사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천시 강화군 서검도와 교동도는 비슷한 환경의 섬이지만, 전자는 초진 대상 지역에 포함되는 반면 후자는 제외돼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열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열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부는 휴일·야간에는 사실상 비대면진료가 어려운 점, 재진 환자 기준이 너무 짧게 설정된 점도 현장에서 제기된 주요 민원으로 꼽았다. 예외적으로 초진이 허용된 대상을 제외하면 해당 의료기관에서 30일 이내(만성질환자는 1년 이내)에 1회 이상 대면진료 받은 환자만 비대면진료가 허용되는데, 현실적으로 이런 재진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대면진료 대상 확대를 검토하겠다는 복지부 방침에 의료계와 약계 모두 강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비대면 진료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을 수호하는 의료 본연의 가치가 훼손된 채 상업적으로 변질됐다”며 “대부분의 의사협회 회원들은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초진 비대면진료는 절대 불가하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대원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비대면진료는 고위험 비급여 의약품의 유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며 “특히 환자를 보지도 못하는 상태로 진료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매우 위험한 진료라는 게 보건의료계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의학계 전문가 측에서도 의료계가 비대면진료에 보다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여러 나라들이 선진적으로 다양한 원격 기술을 의료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큰 위기감을 갖고 시범사업을 바라봐야 한다”며 “의료계와 약계가 걱정하는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반대만 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근거 창출에 나서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비대면진료 해도 전혀 문제없다, 빨리 해야 된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죽으면 책임지실 건가”라고 묻고, 여기에 권 교수가 “답변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고 되받으면서 한때 공청회장에는 날카로운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이날 복지부가 공개한 비대면진료 현황 통계에 따르면 6월 14만373명, 7월 12만7360명이 비대면진료를 이용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2020년 2월부터 시범사업 시행 전인 올해 5월까지의 월 평균 이용자는 20만1833명으로 나타났다. 시범사업 기간 이용자가 코로나19 시기에 비해 30% 이상 감소한 것이다.

복지부는 앞으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자문단 운영 등을 통해 의견을 계속해서 수렴하고, 의료법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도 마련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차전경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불법적인 비대면 진료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하겠다”면서도 “그와 동시에 의료 접근성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고, 개선사항을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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