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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 20%, 지방대가 해결했다…'말뫼의 기적' 꿈꾸는 이곳

중앙일보

입력

스웨덴 말뫼의 터닝토르소. 터닝토르소는 옛 코쿰스 조선소 부지에 지어졌다. 중앙포토

스웨덴 말뫼의 터닝토르소. 터닝토르소는 옛 코쿰스 조선소 부지에 지어졌다. 중앙포토

스웨덴의 항구도시 말뫼는 36년 전 극심한 위기를 겪었다. 1987년 이 지역 대표 기업인 코쿰스 조선소(1840년에 설립)가 문을 닫았다. 말뫼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3만여 명이 실직했고 청년 실업률이 20%까지 치솟았다. 10여 년 뒤 스웨덴 정부와 말뫼시가 내놓은 대책은 뜻밖에도 ‘대학’이었다. 1998년 말뫼대학을 세웠다. 지역을 제조업 기반에서 정보기술(IT)과 바이오 중심의 첨단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말뫼시의 핵심 정책 중 하나였다. 말뫼시는 정부와 유럽연합(EU) 기금을 지원받아 학교 인근에 스타트업 육성 허브인 미디어에볼루션시티도 세웠다. 창업을 원하는 말뫼대 학생들은 학교 인근에 들어선 이곳에서 스타트업을 마음껏 준비할 수 있었다.

이 변화가 지역을 되살렸다. 1990년 22만명까지 줄었던 말뫼시 인구는 2018년 30만명 선을 회복했다. 2007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말뫼 서부항 신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6년 말뫼를 세계 혁신도시 순위 4위에 올렸다. 이제는 전 세계 170여 개국의 기업인과 학생들이 말뫼를 찾는다. 말뫼대는 2021년 스웨덴 전국학생연합(SFS)이 뽑은 스웨덴 최고 대학으로 선정됐다.

달라진 지방대 생존법…지자체와 동반성장

서울시내 한 대학교 강의실의 모습. 뉴스1

서울시내 한 대학교 강의실의 모습. 뉴스1

말뫼대는 한국 지방대의 생존법에 힌트를 주는 사례다. 정부의 재정 지원에 홀로 의존해 버티기보다는 지방자치단체와 연합해 지역과 동반 성장을 꾀하는 윈-윈의 생존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 생존법의 단초를 정부가 제공했다. 단기적인 재정 지원의 고리를 끊고, 지자체에 지방대에 대한 관리·권한을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교육부가 올해 국정과제로 내세운 ‘라이즈’(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이 대표적이다. 라이즈를 통해 교육부가 갖고 있던 지역 대학 관리·감독 권한과 함께 2조원가량의 예산이 2025년 지방자치단체로 넘어온다. 글로컬대학 사업은 5년간 3조원의 예산을 30개 지방대에 집중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자체, 지역 전략산업과의 연계가 주요 선정 기준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말뫼의 기적’을 꿈꾸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경북도청의 경우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주도적으로 대학 정책을 이끌고 있다. 도내 4년제 대학인 안동대와 2·3년제인 경북도립대의 통합에 물꼬를 튼 것도 경북도청이다. 경북도청은 도립대의 설립·운영 주체이기도 하다. 두 대학의 통합은 신입생 모집난을 타개하는 동시에 도의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는 시너지를 노린 것이다.

지난 3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3일 오후 서울 중구 LW 컨벤션에서 열린 2023년 글로컬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3일 오후 서울 중구 LW 컨벤션에서 열린 2023년 글로컬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청은 통합된 두 대학을 중심으로 안동을 바이오산업의 요충지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안동에는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국제백신연구소 안동분원, 백신 상용화 기술 지원센터, 동물세포 실증 지원센터, SK바이오사이언스, SK플라즈마 등 연구개발과 임상 시료 생산시설, 선도기업 등이 있다. 이에 맞춰 지난달 21일에는 경북도와 안동시, 안동대가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전남의 국립대인 순천대는 우주발사체 특화단지 조성에 나선 전북도청과 발을 맞췄다. 전남은 지난달 우주발사체 산업 클러스터 구축 사업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으로 확정되면서 총 2400억원의 예산을 확보한 상태다. 순천대는 학교의 특화 분야를 우주항공첨단소재 등 3개로 정하고, 관련 학과를 특화 분야 중심으로 통합하기로 했다.

“지방 살릴 유일한 키, 대학”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지방 소멸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바로 지역대학이다. 좋은 대학에는 좋은 인재가 모여들고, 그 우수한 인재들을 보고 기업과 국가기관‧연구소들이 유입된다”며 “지방대학 스스로가 현장에서 창의적·혁신적 방안을 발굴하는 현 상향식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자체 쪽에서도 대학을 활용한 아이디어가 꾸준히 나왔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시 지·산·학 협력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박형준 부산시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기존의 기업-학교의 협력 체계에 지자체의 역할을 더해 혁신도시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지방대의 혁신에 지자체와 기업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대학과 같이 호흡할 실무 기관은 시·도 지자체가 아닌 시·군·구 단위의 기초자치단체다.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충북도지사가 제천까지 안 가고, 경북도지사가 안동까지 안 간다”고 강조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는 “기업 역시 오래 일할 직원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근거지 출신의 인재가 절실하다. 지역 발전이 목표인 지자체, 대학과도 니즈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라며 “지금은 제각각인 세 주체의 목표를 소통으로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 반발, 또 다른 옥상옥 구조…부작용 극복해야 

충북대학교와 한국교통대학교 통합을 반대하는 충북대 학생 연합이 1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충북대 대학본부 앞에서 통합추진 반대 집회를 갖고 있다. 중앙포토

충북대학교와 한국교통대학교 통합을 반대하는 충북대 학생 연합이 1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충북대 대학본부 앞에서 통합추진 반대 집회를 갖고 있다. 중앙포토

다만 고등교육에 대한 이해도나 업무 역량이 지자체별로 차이가 큰 점은 해결 과제로 꼽힌다. 박철우 한국공학대 교수는 “대학, 지역, 기업 발전을 통합적으로 이끌고 각 주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현재는 지자체에 그런 역량을 가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와 대학의 관계가 수직적으로 고착화 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한 지방대 기획처장은 “지자체장이 여기저기서 ‘지역 대학 통폐합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비쳐서 걱정이다. 교육부가 권한을 이양했다고 지자체가 교육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과 지자체의 혁신 계획이 구성원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다. 이미 글로컬대학에 예비선정 된 충북대-한국교통대, 강원대-강릉원주대, 부산대-부산교대에서는 학생회, 동문회 등을 통해 통합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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