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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이젠 '약국 뺑뺑이'까지?…"아프면 큰일" 약 품절대란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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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과. 연합뉴스

소아청소년과. 연합뉴스

“맥시부펜시럽(해열제) 500mL 10개 있습니다. 세토펜현탁액(해열제) 교환 원합니다.”
“듀파락이지(변비약) 100개 있습니다. 풀미코트·풀미칸(천식 치료제) 구합니다.”

전국 약사 1300명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 ‘약사를 위한 마켓’에는 매일 수분 단위로 이같은 글이 올라온다. 약국에 떨어진 약을 약사들끼리 물물교환 형태로 조달하는 것이다. 운영자인 약사 문석훈씨는 “없는 약은 매번 달라지는데 약을 구하기 힘들어 전국 각지 약사들이 품앗이처럼 궁여지책으로 약을 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품절 약 대란에 해결사 된 카톡…“잇따른 품절에 황당”

13일 경기도약사회가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 '1년 이상 수급 불안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67.4%에 이른다. 사진 경기도약사회

13일 경기도약사회가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 '1년 이상 수급 불안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67.4%에 이른다. 사진 경기도약사회

코로나19로 촉발된 품절 약 대란이 이어지면서 전국 약사들이 약 구하기 전쟁에 한창이다. 13일 경기도약사회에 따르면 회원 492명을 상대로 지난달 28~31일 조사한 결과 응답 회원 99.4%(489명)가 “의약품 수급 불안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 중 67.4%는 “1년 이상 수급 불안정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대한약사회는 품절의약품을 약국에서 2주 이상 구매하지 못하는 약으로 규정한다. 경기도 부천에서 일하는 약사 최모씨는 “품절 아닌 약이 없을 정도로 약 품절이 연쇄적으로 잇따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 12일 약사 1300명이 모인 한 카카오톡 단체방에 올라온 약 물물교환 글.

지난 12일 약사 1300명이 모인 한 카카오톡 단체방에 올라온 약 물물교환 글.

의약품 부족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관리종합정보포털 ‘감기약 보유추정정보’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동안 약 품목 570개 중 308개(54%)가 ‘월평균 공급량 10%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평원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약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비수기인 여름철에 약 품절 상황이 심각했을 정도면 감기 환자가 많이 늘어나는 환절기가 됐을 때는 어떻게 될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명절 앞두고 어쩌나” 아동병원장 한숨 

특히 소아청소년 의약품 부족 문제는 더 심각하다. 펜데믹으로 약 생산이 줄어든데다 저출산까지 더해지면서 수요가 적은 탓에 소아청소년 약 공급량이 줄고 있다. 구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조달이 불가능한 약들까지 생겨나면서 현장에선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아동병원장 10여명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에는 “약 공급이 대충이라도 되고 있나. 너무 힘들다. 명절 앞두고 수액(공급)까지 문제가 생겼다”는 한 병원장의 한탄 글이 올라왔다. 경남 창원 한 아동병원 관계자들과 인근 약국들이 함께 있는 단체방에는 “뮤코라제정(소염제) 재고 없어요. 대체약도 없습니다” “맥시부펜시럽 재고 없고 품절입니다. 다른 처방 부탁드립니다”와 같은 약사들의 공지가 수시로 뜨고 있다.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원들이 지난 6월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한병원협회에서 소아 청소년 필수약 품절 실태와 대책 마련 촉구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원들이 지난 6월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한병원협회에서 소아 청소년 필수약 품절 실태와 대책 마련 촉구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지난 6월 전국 아동병원 44곳을 조사한 결과 소아청소년 천식·독감 치료제, 항생제 등 141개 필수 의약품이 짧으면 2주에서 길게는 1년 이상 품절이거나 수시로 품절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달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도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의 해열제 등 의약품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냈다. 3개월 전 조사지만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상황이 지금도 똑같다"고 전했다.

약 부족 사태에 따라 일부 부모는 ‘약국 뺑뺑이’를 돌고 있다. 각 지역 맘 카페에는 “풀미코트 구할 수 있는 동네 약국이 어디냐”와 같은 글이 쏟아지고 있다. 미취학 아동 세 자매를 키우는 간호사 출신 오모(여)씨는 “호흡 발작이 있는 아이가 있어 네블라이저(호흡 보조기) 약을 미리 사둬야 하는데 약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 약을 구하지 못했다. 응급 상황이 생길까 봐 겁난다”고 말했다. 5·3세 자매를 키우는 30대 주부 김모씨는 “약이 없다는 약국이 워낙 많다 보니 엄마들 사이에서는 ‘노인이 많은 동네로 병원을 가라’는 조언이 퍼졌을 정도”라고 전했다.

의약품 부족 현상은 원인은 여러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이  의·약계 안팎 설명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약 품목마다 상황이 달라 원인을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렵다”며 “코로나19 이후 전 국민이 필요한 약이 많아지면서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 대응 민관 실무협의체’를 꾸려 대응하고 있다. 지난 1일 열린 제7차 회의에서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에 대한 생산 독려 ▶신속한 약가 적정화 등이 논의됐다. 복지부는 가수요에 따라 일부 약국 등에서 매점매석 행위나 불필요한 품절이 일어나고 있다고도 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공급 정상화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 보고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약 업계는 약가 인상 등을 해법으로 보고 있다. “마진이 적으면 생산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이유에서다. 한 지역약사회 관계자는 “대형 약국에만 약이 몰리고 동네·골목 약국엔 약이 씨가 말랐다. 약국 간 공급 불균형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양동 대한아동병원협회장은 “편의점에서도 전사적자원관리(ERP)가 이뤄지는데, 정부·제약사·도매상·병원·약국 간 물류관리 시스템이 없는 게 가장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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