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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급증…50년 만기 제한, 변동금리 DSR 한도 낮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가계대출 증가세를 막기 위해 대출규제 카드를 다시 꺼냈다. 우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과 특례보금자리론 요건을 강화해 공급을 제한한다. 또 변동금리 상품에 ‘대출규제 끝판왕’으로 불리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한도를 지금보다 더 낮추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지난달 가계대출 6.2조 급증…50년 만기 쏠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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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금융위원회는 이세훈 사무처장 주재로 ‘가계부채 현황 점검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회의에는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한국은행·금융감독원 등 유관 기관이 참석했다.

13일 금융위는 전체 금융권의 지난달 가계대출이 전달과 비교해 6조2000억원 늘었다고 밝혔다. 5개월 연속 증가 폭이 확대했는데, 특히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 규모만 6조9000억원에 달했다. 한 달 기준으로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가장 많다.

금융위는 최근 가계대출이 급증한 배경에 은행권의 느슨한 대출행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장기 대출 상품을 중심으로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린다’는 DSR 규제 취지를 어기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주범으로 떠오른 것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총 8조3000억원을 공급했는데, 이중 6조7000억원이 7~8월에 집중돼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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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만기가 짧은 다른 대출보다 한 달 원리금(원금과 이자의 합)이 낮아져 동일한 소득과 규제에서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50년 동안 대출을 갚지 못하는 고령자들도 DSR 규제 우회를 위해 이 상품을 이용했다. 또 시중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다주택자에게도 공급돼 투기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도 있었다.

만기산정 40년으로 제한…연금 소득까지 따진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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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는 50년 만기 같은 장기 대출이 DSR 규제 우회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2단계 대책을 내놨다. 우선 상환 능력이 확인되지 않으면 DSR 산정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제한한다. 50년 만기로 대출을 받더라도 DSR 요건에 맞는지 계산 할 때는 40년을 기준으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50년 만기보다 한 달 원리금이 올라가기 때문에 대출 한도가 그만큼 준다.

하지만 50년 동안 빚을 상환할 수 있다면 DSR 산정에도 50년 만기를 그대로 적용하기로 했다. 대출 상환 능력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은행권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이와 관련 김태현 금융위 거시금융팀장은 “50년 만기를 취급하는 정책모기지 기준을 참고해 은행들이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주택금융공사 정책모기지는 50년 대출을 연령(만 34세 이하)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향후 시중은행도 연령 제한을 내걸 가능성이 높다. 제도 변경안은 13일부터 즉각 시행한다.

첫 번째 조치가 자리 잡으면, 이후 모든 대출에 있어서 미래소득 흐름을 고려한 만기 설정 원칙을 확립하기로 했다. 장기 대출을 받아 은퇴 후에도 돈을 갚아야 한다면, 현재 연봉은 물론 은퇴 후 소득까지 고려해 대출 만기를 설정하도록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연금소득이나 직업별 은퇴 시점까지 대출 만기 설정에 적용될 수 있어 돈을 빌리기가 더 까다로워진다.

변동금리는 DSR 한도 사실상 하향

변동금리 대출 상품에 대해서는 기존 DSR 규정을 더 강화하는 스트레스 DSR 도입을 검토한다. 스트레스 DSR이란 향후 금리 상승 가능성을 DSR 산정에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득 5000만원 직장인이 금리 4.5%로 50년 만기 대출할 때 DSR 한도 40%를 적용하면 4억원까지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 DSR을 도입해 향후 오를 수 있는 금리를 1%포인트로 설정한다면, DSR 산정시에 금리 5.5%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대출 가능 금액은 3억4000만원으로 줄어든다. 사실상 변동금리 상품에 대해서 DSR 한도를 축소하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규제 범위도 전금융권 상품으로 확대해 예외를 두지 않기로 했다. 구체적 적용 기준에 대해서는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대출이 많은 특수은행의 대출 규제 특례가 적정히 운영되고 있는지 등도 점검한다.

집값 불안에 센 대출규제…“공급 병행해야” 

이세훈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이세훈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이 예상보다 센 대출규제를 꺼낸 배경에는 최근 집값 반등과 부동산 공급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도 일부 위원은 “2년 정도 신규주택 공급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확대될 경우 금융안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기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로 기준금리를 쉽사리 못 올리는 상황에서 결국 대출규제를 통해 가계대출 상승세를 꺾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향후 가계대출 증가가 이어지면,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한 대출 총량 규제 같은 더 센 규제가 나올 수도 있다. 다만 김 팀장은 “현재는 대출 총량 규제까지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출규제는 물론 적절한 부동산 공급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급이 부족해 집을 살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 심리부터 일단 차단해야 가계대출이 무리하게 증가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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