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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왜 지금 절대종신형인가

중앙일보

입력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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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형법 개정으로 사형의 집행시효(30년)가 폐지됐다. 법 개정이 안 됐으면 11월에 처음 시효가 만료된 사형수가 나왔을 것이다. 바로 1993년 ‘왕국회관’ 방화사건(15명 사망)의 범인 원언식이다. 집행시효 조항이 남아 있었다면 그를 계속 구금할 근거가 마땅치 않아 혼란이 예상됐다. 미결 상태의 다른 사형수 58명도 마찬가지다.

 실제 집행은 하지 않으면서 사문화된 법 조항으로 존재하는 사형제 때문에 여러 모순과 충돌이 발생한다. 형벌의 범죄예방 효과를 반감하고, 공권력 실행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집행할 수 없는 허수아비 법률은 폐지하는 게 옳다는 주장도 많다. 하지만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사형제의 폐지 문제를 쉽게 결정하긴 어렵다. 문명이 탄생하고 가장 오랜 딜레마였던 만큼 다양한 담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형제 실효성 논란 계속 번져
시대·국가·학자마다 의견차 커

인명에 대한 오판 가능성 상존

 그중 첫 번째는 응보주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경구처럼 사형은 국가가 개인을 대신하는 공적 보복이다.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는 중국·인도 등 33개 나라가 기본적으로 응보적 입장을 취한다. 서구에선 근대국가 형성 이후 사회계약론 관점에서 사형제를 옹호했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의 주목적은 생명 보존”이라며 “계약을 파기한 살인자를 사형시키는 것은 적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라고 했다.(『사회계약론』)

 한국에선 공리주의적 관점이 주를 이룬다. 범죄예방 효과가 있으므로 존치해야 한다거나, EU 등 선진국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 집행해선 안 된다는 식이다. 제러미 벤담은 “형벌의 중요한 목적은 처벌을 본보기 삼아 사회 전체의 효용을 높이는 것”이라며 “위법 행위로 인한 이득보다 형벌의 고통이 더욱 커야 한다”고 했다.(『도덕과 입법 원리 입문』)

 사형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임마뉘엘 칸트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범죄예방의 수단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내적 도덕률에 따라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 사형이라는 이야기다. 칸트는 “제아무리 고통받는 삶도 죽음과 동등할 순 없다”며 “공적 정의를 충족하기 위해선 살인자에게 사형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했다.(『윤리형이상학』)

 그러나 앞선 논의에 빠져있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현대 사법제도엔 본질적 모순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신이 아닌 인간에겐 늘 오판 가능성이 있다. ‘가짜뉴스’로 억울하게 죽은 소크라테스처럼 인간은 언제나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1969년 ‘위장귀순간첩’ 혐의로 사형된 이수근씨와 같이 재심(2018년)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경우도 종종 나온다. 한국이 1997년 12월 이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가 된 데에는 한때 사형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도 컸다.

 정치적 의도에 의한 사법살인이나 오판 가능성은 인간이 만든 사법제도의 근본적 한계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는 재심을 통해 보완한다. 2020년 재심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 누명을 벗은 윤성여씨처럼 판결이 뒤바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미 사형이 집행되고 난 뒤라면, 재심으로 진실이 밝혀진다 한들 고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일 루소와 칸트가 현대 사법제도의 한계를 충분히 인지했다면 생각이 달랐을 수 있다. 살인자에 대한 공적 복수든, 사회적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든 사형수가 100% 진범이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논리가 성립한다.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는 불완전한 제도이면서 불가역적 결과까지 초래하는 사형제는 인권을 제1의 가치로 여기는 현대 민주주의의 정신에 어긋난다.

 지금 헌법재판소에는 사형제가 위헌 심판대에 올라와 있다. 1996년엔 7대 2, 2010년엔 5대 4 합헌으로 격차가 계속 줄었다. 만약 이번에 위헌 결정이 나온다면, 극악무도한 흉악범을 단죄할 사형제의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근대 형법의 기초를 마련한 체사레 베카리아는 “한순간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사형보다는 참담한 미래를 보여주는 종신노역형이 더욱 공포스럽고 범죄예방 효과도 강하다”고 했다.(『범죄와 형벌』)

 실제로 2019년 ‘사형 폐지에 따른 법령 정비 및 대체 형벌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사형수들은 사형보다 가석방 없는 절대종신형을 더 큰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베카리아의 주장처럼 절대종신형의 응보 및 범죄예방 효과가 크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절대종신형은 사형제의 불가역성을 보완할 수 있어 오판 가능성 문제에서 부담이 덜하다. 사형제의 수명이 다해가는 지금, 실효성 있는 대안 중 하나로 절대종신형을 논의할 때가 됐다.

글=윤석만 논설위원, 그림=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