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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대형 헬스장 또 일방적 폐업 ..피해자들 "먹튀, 고소 진행"

중앙일보

입력

지난 2일 A 헬스장 입구에 붙어 있는 폐업 및 운영 주체 변경 안내문에 헬스장 회원들이 "먹튀", "환불해라"며 항의 문구를 남겼다. 사진 독자 제공

지난 2일 A 헬스장 입구에 붙어 있는 폐업 및 운영 주체 변경 안내문에 헬스장 회원들이 "먹튀", "환불해라"며 항의 문구를 남겼다. 사진 독자 제공

 구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홍모(30)씨는 한 대형 프랜차이즈 헬스장인 A업체의 구로점에 지난달 23일 회원 등록을 했다. 그러나 열흘도 안 된 지난 2일 헬스장에서 갑작스러운 안내를 받았다. ‘운영 업체가 변경됐고, 10월 말까지 진행되는 리모델링 공사로 헬스장을 당분간 이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운영업체 변경과 리모델링 공사를 사유로 내걸었지만 해당 지점의 폐업이나 마찬가지였다. 홍씨는 “등록 당시 폐업 관련 안내를 받은 적이 없어서 황당하다”고 말했다. A업체의 구로점은 회원 수만 900명이 넘는다.

A업체 관계자는 “도의적 책임은 인정한다”면서도 “매매 계약상 인수 업체가 사전 고지를 하기로 협의했는데 제때 하지 않아 생긴 오해다. 회원들의 민원도 응대 중이고, 환불도 진행될 예정인 만큼 ‘먹튀’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해당지점을 인수한 업체는 피해자들에게 “공사 기간만큼 회원권을 연장하고, 환불은 10월 말~11월 초에 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폐업, 휴업 등의 경우 3영업일 이내에 반환해야한다는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한국소비자원에 이미 신고를 했고,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다.

 헬스장, 필라테스 등 체력단련시설을 운영하는 일부 업체가 갑자기 폐업하고 환불을 미루는 사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체력단련시설의 피해 구제 신청은 2020년 3068건, 2021년 3224건, 2022년 3586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10일 서울 구로구 A 헬스장 입구에 있는 간판. 새 인수자인 B업체가 전단을 붙여 홍보하고 있다. 이영근 기자.

10일 서울 구로구 A 헬스장 입구에 있는 간판. 새 인수자인 B업체가 전단을 붙여 홍보하고 있다. 이영근 기자.

 ‘먹튀’ 사례는 서울 뿐 아니라 전국에서 속출 중이다. 지난 3월엔 경상도를 중심으로 전국 25개 지점을 둔 대형 필라테스 업체가 회원들에게 무기한 휴업을 통보했다. 울산에 거주하는 이모(20대)씨는 “해당 업체가 폐업 직전까지 70% 할인을 내걸고 공격적으로 회원을 유치했다”면서 “120만 원짜리 2달 치 회원권을 구매했는데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당 업체는 사기 등 혐의로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다.

지난달 21일엔 인천 최대규모 헬스장을 운영하다 경영 악화로 폐업하고 임금을 체불한 뒤 1년 반 동안 잠적했던 사업주가 고용노동부에 붙잡히기도 했다. 전혜경 대한스포츠사업자 협회장은 “염가로 회원을 유치한 뒤 사정이 악화하면 먹튀하는 구조”라면서 “전세 사기와 유사한 구조지만 개별 피해 금액이 작아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에 25개 지점을 둔 대형 필라테스 업체가 입점한 대전 유성구 한 백화점에 지난 4월 피해자들이 찾아가 항의하고 있다. 이 업체는 지난달부터 경상도 지역 지점에 임시 휴업을 통보한 가운데, 대전지역에 있는 두 지점도 무기한 잠정휴업에 돌입해 회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국에 25개 지점을 둔 대형 필라테스 업체가 입점한 대전 유성구 한 백화점에 지난 4월 피해자들이 찾아가 항의하고 있다. 이 업체는 지난달부터 경상도 지역 지점에 임시 휴업을 통보한 가운데, 대전지역에 있는 두 지점도 무기한 잠정휴업에 돌입해 회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피해자들을 구제할만한 마땅한 방법 역시 없는 실정이다. 민·형사 소송을 걸 수 있지만 시일이 많이 걸린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것이다. 지급 명령을 신청하면 채무자에 대해 별도 심문 없이 채권자의 서류를 바탕으로 재판이 진행된다.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장점이 있지만 폐업한 업주(채무자)의 실거주지를 알아야 하고, 지급명령이 받아들여져도 상대방이 2주 안에 이의제기를 하면 무효돼 한계가 있다. 만약 신용카드 할부 결제로 헬스장을 등록했다면 할부금 지급을 거절할 수도 있지만 먹튀 업체는 폐업 직전까지 현금 결제나 일시불 결제를 조건으로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이마저도 실효성이 낮다.

 이 때문에 국회에선 헬스장 먹튀 피해를 줄이기 위한 법안을 잇따라 발의 중이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체육시설이 3개월 이상 휴업하거나 폐업할 경우 그 사실을 휴업 또는 폐업 14일 전까지 이용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내용의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 9일 대표 발의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3개월 이상 이용료를 미리 받은 체육시설업자의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체육시설에 규정되지 않아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요가업과 필라테스업을 체육시설업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이달 내 발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법개정까지는 하세월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전세보증보험처럼 헬스장 사업자들에게 보증보험을 들도록 하고, 보험을 들지 않은 사업자에게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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