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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목 졸라 혼냈는데 '아동학대 고소'…대전 교사 극단선택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대전 초등학교 교사가 생전 교권 침해를 당했다고 호소한 기록이 공개됐다.

9일 대전교사노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7월 초등교사노조의 교권 침해 사례 모집에 자신의 사례를 직접 작성해 제보했다.

대전의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가운데 지난 8일 재직했던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초등학교 정문에 고인을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숨진 교사는 지난 2019년 아동학대 혐의로 학부모에게 고소당하면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알려졌다.   교사는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뉴스1

대전의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가운데 지난 8일 재직했던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초등학교 정문에 고인을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숨진 교사는 지난 2019년 아동학대 혐의로 학부모에게 고소당하면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알려졌다. 교사는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뉴스1

문제 학생 학부모 “규칙이 과해…조용히 혼내달라”

해당 글에는 A씨가 1학년 학급 담임을 맡았던 2019년 상황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A씨는 아동학대 혐의로 11월경 고소 당했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교사 A씨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B 학생이 학기 시작 직후인 3월부터 교실에서 잡기 놀이를 하거나 다른 친구의 목을 팔로 졸라 생활 지도를 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B 학생이 수업 중 갑자기 소리를 쳐서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을 안 하고 버티거나 친구를 발로 차거나 꼬집기도 했다.

해당 학생의 학부모는 상담에서 “학급 아이들과 정한 규칙이 과한 것일 뿐 누구를 괴롭히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선생님이 1학년을 맡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조용히 혼을 내든지 문자로 알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B 학생의 문제 행동은 계속됐다. 어느 날엔 이 학생이 급식을 먹지 않겠다며 급식실에 누워서 버티자 A씨는 학생을 일으켜 세웠는데, 10일 후 B 학생 어머니는 ‘아이 몸에 손을 댔고 전교생 앞에서 아이를 지도해 불쾌하다’ 항의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2학기부터는 친구 배를 발로 차거나 뺨을 때리는 행동까지 있었다. 이에 A씨는 B 학생을 교장 선생님에게 지도를 부탁했다. 다음날 B 학생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사과를 요구했지만, 당시 교장과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는 학부모에게 학생에게 잘못된 행동을 지도하려 했을 뿐 마음의 상처를 주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으나, 해당 학부모는 12월 2일 국민신문고와 경찰서에 아동학대로 결국 신고를 넣었다.

무혐의 받았지만…“다시 좋은 선생님 될 수 없을 것 같다”

사진 대전교사노조

사진 대전교사노조

교육청 장학사의 조사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학폭위에서는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심리상담 및 조언 처분을 받으라는 1호 처분이 내려졌다. A씨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적었다.

A씨는 검경 조사를 받은 뒤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10개월이 지난 일이었다.

A씨는 교권 상담 신청도 했는데, 신청 내용에는 ‘언제까지 이렇게 당해야 할지 몰라서 메일 드렸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A씨는 제출한 글에서 “3년이란 시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다시금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을 보고 공포가 떠올라 계속 울기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어떠한 노력도 내게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말미에 “서이초 사건 등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어 교사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다시 안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었다.

A씨는 이 글을 쓴 지 약 한 달 반 뒤인 지난 7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세상을 떠났다.

가해 학부모 운영 업장엔 별점 테러  

가해 학부모로 알려진 이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별점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포털사이트 캡처

가해 학부모로 알려진 이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별점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포털사이트 캡처

지역 주민 등 네티즌들은 가해 학부모로 지목된 이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업장 2곳에 별점 테러를 하고 나섰다.

지난 8일부터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학부모가 운영한다는 사업장 정보가 공유됐다.

이날 오후 두 사업장의 온라인 후기 별점은 모두 1점대다. 대부분 후기는 전날부터 올라왔다. 후기에는 “선생님 자살하게 만든 학부모 4명 중 한 분이 여기서 일하는 사장님이라고 들어서 구경 와봤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뿌린 대로 거둔다”, “왜 그랬어요?”, “괴롭힘으로 사람 죽인 가게가 여긴가요?” 등 가해 학부모를 지목하며 비난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해당 업장과 동일한 상호명을 가진 업장에서는 “대전에서 발생한 모 초등학교 관련된 사건과는 무관하오나 지속된 연락으로 영업에 많은 지장이 있사오니 자제부탁드린다. 꼭 주소를 확인하고 연락바란다”는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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