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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장돌뱅이와 완행열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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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호 31면

기차표, 전남 장성, 1977년. ⓒ김녕만

기차표, 전남 장성, 1977년. ⓒ김녕만

가을볕이 따가운 장터에서 하루종일 땀을 흘린 장돌뱅이 할아버지의 어깨에 멘 짐이 가벼우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도 덩달아 가볍다. 오른쪽 어깨가 축 처지지 않은 거로 보아 팔지 못한 물건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은 모양이다. 당시 전라북도 남부와 전라남도 북부 일대 오일장에 가면 이 할아버지와 종종 마주치곤 했다. 비록 값싼 나일론 줄 같이 별거 아닌 것을 파는 장꾼이지만 망건까지 갖추어 쓰고 옷매무새를 함부로 하지 않았다. 워낙 더운 날에는 대나무로 만든 등걸을 목에 둘렀는데 이는 삼베옷이 땀에 절어 목에 찰싹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다.

전남 장성역에서 우연히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기차표를 망건에 꽂은 할아버지가 역에 들어서자 때맞추어 할아버지를 집으로 데려다줄 호남선 완행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늘 떠나고 돌아오는 장꾼의 삶처럼 완행열차도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또한 크든 작든 장이 서는 곳마다 빼놓지 않고 찾아다니는 장꾼처럼 아무리 작은 역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완행열차는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속도였던 것 같다. 그것은 차창 밖의 풍경을 놓치지 않고 느긋하게 눈에 담을 수 있는 속도였다. 기차 속에서도 건널목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들과 눈을 맞출 수 있고, 멀리 손금처럼 가느다란 논둑을 따라 소를 몰고 가는 농부의 걷어 올린 구릿빛 종아리와 장에 갔다가 돌아가는 아주머니들의 종종걸음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삶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서 완행열차도 오일장처럼 뒷전으로 밀리고 고속열차가 등장했다. 작은 역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뿐더러 타고 내릴 때 역무원과 기차표를 주고받는 일조차 생략된 고속열차는 현대인의 삶의 속도처럼 무섭게 빠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향해 고속열차처럼 그리도 조급하게 달려가는 중일까. 쉬엄쉬엄 가도 결국엔 모두 인생의 종착역에 닿게 될 텐데 말이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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