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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惟仁者 能好人 能惡人(유인자 능호인 능오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다른 사람을 미워할 자격이 없는 사람도 불쌍하지만, 좋아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은 더욱 불쌍하다. 미워할 자격이 없는 사람은 “너나 잘해!”라는 핀잔을 받는 사람이고, 좋아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감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말한다. 모두의 기피 대상이 바로 좋아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인 것이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할 수도 있는 자격을 갖는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욕심과 삿된 목적에 마음이 매이고 눈이 가려 호오(好惡:좋아하고 싫어함)와 선악의 기준을 바르게 세울 수 없기 때문에 미워할 자격도 좋아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

惟:오직 유, 能:능할 능, 惡:미워할 오. 어진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다. 23x69㎝.

惟:오직 유, 能:능할 능, 惡:미워할 오. 어진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다. 23x69㎝.

요즘 우리 사회에는 좋아할 자격도 미워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 나대는 경우가 참 많다. 누가 누구를 욕하는지, 욕하는 자와 욕먹는 자가 뒤바뀌어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들고 큰소리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 난무하고 있다. 국민이 심각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너나 잘해!’라는 욕을 먹거나 아예 사람 취급을 못 받으면서도 ‘윗선’에 자리를 잡고 계시는 분들은 남을 탓하고 욕하기 전에 과연 자신에게 ‘능호인 능오인(能好人 能惡人)’의 자격이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