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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지금 … '두 얼굴' 의 공화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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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면1

24일 오후 평양 시내 모란봉 구역의 모란봉 제1중학교(6년제.만 16세에 졸업). 영어회화실.탁구장.물리실험실.공연실 등을 갖춰 북한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북한이 외부 인사들에게 공개하는 학교 중 하나다. 4학년 1반 교실엔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양'의 자리가 만들어져 있다. '제국주의자들의 도전을 단호히 짓부시자' 등 시내 곳곳에 나붙은 반미 구호의 분위기가 흐른다. 하지만 아래층에 있는 영어학습실에서 두 남학생이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What are you going to do this afternoon?(오늘 오후에 뭘 할 거니?)" "Well, I'm thinking about….(내 생각에는….)" 곧이어 교실 왼쪽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에서 대화 화면이 돌아가자 30여 명의 학생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따라 읽는다.

학생들의 성적 경쟁은 남쪽보다 치열하다. 복도 벽에는 학년.학급별 성적표가 붙어 있다. 1등부터 꼴찌까지 성적순으로 사진을 붙여 놓은 게 특이하다. 한 교사는 "매달 치르는 시험 결과에 따라 사진 위치가 바뀐다"고 말했다. "꼴등만 계속할 경우 예체능 분야로 바꾸거나 다른 학교로 옮겨야 한다"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북한의 최고 명문 중 하나로 알려진 평양 제1중학교 등도 이런 방식으로 성적표를 공개한다고 한다.

모란봉 제1중학교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떨어진 평양시 강남군 장교리의 한 중학교. 낡은 단층 건물에 홑유리 창문뿐이다. 창문의 금 간 유리창은 방치돼 있고, 담장 곳곳엔 시멘트 벽돌이 부식돼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 남측 방문단에게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이곳 사정에 밝은 한 남측 인사는 "평소 같으면 애들이 교실 바깥에서 뛰노는데 오늘은 한 명도 나와 있지 않다"고 했다. 남측 방문단의 카메라 세례를 의식한 예방조치로 풀이됐다.

#장면2

평양 주민들의 생활상 역시 차이가 컸다. 시내 중심가의 김일성 광장에선 각급 학교에서 차출된 중학생 수백 명이 머리에 쓴 '노란 모자'가 물결쳤다. 내년 봄 아리랑축전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집체 연습을 하는 중이다. 김일성 광장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의 용천교 일대에선 군밤.군고구마를 맛보려는 시민들이 매점 앞에 줄지어 섰다. 인근 연꽃공원에는 자녀의 손을 잡고 연못가를 거니는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반면 평양 외곽에선 겨울철 난방을 연탄에 의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석탄 가루를 배급받아 직접 진흙에 개어 구공탄으로 만들어 쓴다. 타고 남은 구공탄은 사람이 다니는 인도(人道) 표시용으로 흙길 양쪽에 묻는다. 제각기 만든 탓인지 길바닥에 깔린 구공탄은 크기가 다르다. 그나마 석탄 배급량이 부족해 주민들은 올겨울 난방을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장면3

평양의 어린이 식료품 공장에서 25일 트럭들이 콩우유(두유)를 싣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콩우유 제조 장비는 남측의 대북 지원단체인 ‘남북 어린이 어깨동무’의 후원으로 설치됐다. 콩우유 배급 트럭 위로 북한의 선전 구호가 보인다. 이곳에서 생산된 콩우유는 평양 시내 일부 소학교(초등학교) 급식으로 사용된다.

25일 평양의 어린이 식료품 공장. 공장 외벽에는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업을 선전하는 구호.포스터 등이 가득하다. 공장의 한 직원은 "우리들은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불타는 결의에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다. 이곳에선 '영양 암가루(이유식)' '애기 젖가루(분유)'를 생산한다. 공장 한쪽에는 남측의 후원으로 세워진 콩우유(두유)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핵 보유국의 자랑을 안고 선군혁명 총진군에 새로운 박차를 가하자!"는 구호가 붙은 담벽을 돌아서자 네 대의 트럭이 제품을 싣고 있다. 인근의 소학교들로 두유를 배급하는 차량이다. 이 공장은 남측의 대북 지원 단체인 '남북 어린이 어깨동무'가 사준 350만 달러(약 33억원) 상당의 설비를 가동해 올 3월부터 하루 최대 50t의 두유를 생산 중이다.

남측 단체가 장교리 마을에 건설한 인민병원(모자복지센터) 준공식엔 최성익 북한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과 의료진.주민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권근술 어깨동무 이사장은 "남북 어린이들이 어깨동무를 하려면 키가 같아야 한다"며 "건강한 어린이들이 태어나 남쪽을 방문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평양=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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