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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 놓은 게, 식당 20년에 가장 잘한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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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경기도 판교에서 일하는 직장인 정욱(42)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중국집에 들른다. 단골이지만 종업원 얼굴조차 모른다. 탁자마다 달린 ‘키오스크(kiosk·무인 단말기)’로 메뉴를 주문해서다. 음식이 준비되면 터치패드에 알림이 뜬다. 스스로 배식구로 가서 음식을 받아야 한다. 정씨는 “식당을 나갈 때까지 종업원과 대화를 하는 것은 물론 눈을 마주칠 일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 중국집 주인 박모(48)씨가 키오스크를 도입한 건 지난 2021년 6월이다. 직장이 밀집한 곳이라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손님이 확 줄었는데, 종업원 2명 인건비가 부담스러웠다. 고민 끝에 리모델링하며 탁자마다 키오스크를 달았다. 요리사 2명은 그대로 두고 종업원은 1명만 남겼다. 박씨는 “지나고 보니 어떻게 종업원을 2명씩이나 데리고 일했나 싶다”며 “식당 일만 20년 가까이 하면서 키오스크 넣은 게 가장 잘한 일 같다”고 털어놨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키오스크가 직장인이나 젊은 층이 몰리는 번화가뿐 아니라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골목 상권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소병훈(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외식업체에 설치한 키오스크 대수는 2019년 5479대에서 지난해 8만7341대로 늘었다. 3년 새 15배 늘어난 셈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2 외식업체 경영 실태조사’에 따르면 키오스크 등 무인 주문기를 사용한다고 답한 외식업체 비율은 2019년 1.5%에서 지난해 6.1%로 늘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각종 통계가 전체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인 만큼 번화가나 대형 브랜드일수록 키오스크를 설치한 비율은 더 높다. 예를 들어 2015년 국내 최초로 디지털 키오스크를 도입한 맥도날드를 비롯해 버거킹·롯데리아 같은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키오스크 도입률은 70% 이상이다.

자영업자 입장에선 경제성을 무시할 수 없다. 키오스크 1대당 설치비용은 최소 200만에서 최대 1200만원 이상이다. 2024년 기준 최저임금은 시간당 9860원이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월급은 206만원꼴이다. 단순히 계산했을 때 300만원 짜리 키오스크 2대를 설치할 경우 종업원 1명 월급의 3달 치가 ‘손익분기점’이다. 키오스크를 렌털할 경우 월 5만~30만원(36개월 할부)꼴로 부담이 덜하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키오스크 확산이 외식업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쓴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용을 아끼는 측면도 크지만 종업원 교육에 드는 시간, 갑자기 그만두는 등 고용 불확실성, 대인 업무상 발생할 수 있는 갈등 측면까지 고려할 때 키오스크의 효용이 높다”고 분석했다.

키오스크 확산은 최근 불황과도 맞물려 있다. 단적으로 ‘나홀로 사장님’이 폭증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년 전보다 4만4000명 늘어난 438만3000명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 이후 15년 만에 최대다. 지난해 자영업자 중 나홀로 사장 비중(75.8%)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76.3%)에 근접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대료 상승, 문재인 정부 시절 급등한 최저임금, 코로나19에 따른 불황, 배달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 증가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키오스크의 확산이 1인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다만 키오스크 확산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소병훈 의원은 지난 4월 IT 기기 사용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도 키오스크를 쉽고 편리하게 접근ㆍ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키오스크가 IT 취약층을 암묵적으로 차별하고, 노동 시장에선 저임금ㆍ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그늘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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