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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풀에 경의를…50년 간 자연 탐구한 미술가 임동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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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임동식, 1975 여름 안면도 꽃지해변의 기억, 2015-2020, 캔버스에 유채, 182 x 227cm. [사진 가나아트]

임동식, 1975 여름 안면도 꽃지해변의 기억, 2015-2020, 캔버스에 유채, 182 x 227cm. [사진 가나아트]

‘겨울이 가고 봄이 오다’ 2015~2016, 캔버스에 유채, 182x227㎝. [사진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다’ 2015~2016, 캔버스에 유채, 182x227㎝. [사진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서울 평창동 임동식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뉴시스]

서울 평창동 임동식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뉴시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 임동식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가나아트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 임동식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가나아트

미술 애호가들이 ‘2020년 최고의 미술 전시’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게 있다. 서울 서소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임동식(78) 회고전이다. 1970년대부터 자연과 현장을 기반으로 작업해온 300여 점의 작품과 기록물로 소개한 대규모 전시였다. 기간은 3개월이었으나 코로나19 탓에 문을 연 날이 한 달도 채 안 됐다. 50년 가까이 자연과 예술,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온 작가를 조명한 전시는 그렇게 끝났다.

1991년 ‘금강에서의 국제자연미술전’에서 펼친 임동식의 야외 퍼포먼스 ‘이끼’ 사진. [사진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1991년 ‘금강에서의 국제자연미술전’에서 펼친 임동식의 야외 퍼포먼스 ‘이끼’ 사진. [사진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1993년부터 그려온 유화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218x367.5㎝) 앞에 선 임동식 화백. [뉴시스]

1993년부터 그려온 유화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218x367.5㎝) 앞에 선 임동식 화백. [뉴시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 임동식 전’이 지난 1일 개막했다. 전시는 다음 달 1일까지다. 회화 40여 점과 드로잉 100여 점을 볼 수 있는데, 전시장에 들어서 처음 만나는 그림부터 범상치 않다. 공룡 알 같은 게 널린 바닷가 풍경인데, 유화 물감으로 그리면서 최소한의 기름만 썼고, 세필 터치가 두드러진 화면엔 독특한 기운이 감돈다. 다른 그림엔 풀만 무성하다. 그 안에 사람만 한 풀무더기가 보이는데, 작품 제목이 ‘온몸에 풀 꽂고 걷기’다. 이른 봄의 풍경을 화려하게 담은 그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다’도 보인다. 자연에 경의를 표하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1974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임동식은 ‘한국청년미술작가회’ 창립 멤버이며, 자연 현장을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75년 8월 충남 안면도 꽃지해변에서 벌인 퍼포먼스가 이번 전시에 ‘1975 여름 안면도 꽃지해변의 기억’이란 제목의 대형 회화로 나왔다. 바로 공룡 알 그림이다. 그는 81년 국내 최초 자연미술운동그룹 ‘야투’(野投·들로 던진다)를 설립했다. 그해 독일로 유학을 떠난 그는 83년부터 국립 함부르크 미술대학(HFBK)에서 수학했고, 90년 귀국했다. 충남 공주 원골마을에 정착한 그는 “농사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연예술이자 생태예술”이라며 ‘예술과 마을’ ‘자연예술가와 화가’ 등 다양한 작업을 이어왔다. 지난 2일 그를 만났다.

3년 전 전시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보지 못했다.
“아쉽지만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앞서 서울시에 자료 1300건(5400여 점)을 기증했는데, 그 자료를 학예사들이 하나하나 분류해 작품과 함께 배치했다. 환상적인 전시였다.”
기증 자료가 지난 4월 서울 평창동에 개관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 ‘임동식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소장돼 있다.
“회화 중심으로 작업했다면 그런 자료가 나올 수 없었을 거다.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야외 현장 작업이 많다 보니 작업 구상 드로잉부터 현장 사진, 메모 등을 일과처럼 정리해왔다. 그게 또 재밌었다.”
일찍부터 야외에서 퍼포먼스를 많이 했다.
“옛날에도 풍경화가나 인상주의 화가들은 야외 현장에서 그림을 그렸다. 한국에도 실경산수화 전통이 있었고. 안팎을 따지는 건 두 번째 문제다. 중요한 건 ‘미술이라는 것을 도시화한 환경과 틀 안에서만 생산되는 것처럼 여기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게 맞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였다. 평생 하는 예술인데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내 것’을 만들고 싶었다.”
독일에 남아 작업할 수도 있었는데.
“게하르트 리히터(91)나 안젤름 키퍼(77) 등 세계적인 독일 작가들을 보면 특유의 감성이 있다. 독일적이면서 리히터적이고, 독일적이면서 키퍼적인 거다. 철저히 자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골에 정착한 이유는.
“고향은 아니지만, 자연이 좋았다. 내 작업이 자연 가까이 있어야 할 수 있으니까. 서울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고, 유학한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도시 생활은 충분히 했다.”

임동식은 “원골로 가면서 ‘서양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을 하자’고 생각했다”며 “우리 입맛에 제일 잘 맞는 된장이지만, 처음 먹는 서양 사람은 그 맛을 이해할 수 없다. 입맛도, 보는 것도 보편타당하게 통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양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각자 고유의 것을 찾아 표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상에서 잊힌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아니라, 나를 알릴 에너지와 작업할 것, 그 내용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자연과 인간의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 불안을 자극하는 것들이 넘치는 세상에 내 작업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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