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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밝힌 죽음 3.7만건인데" 1853건 푼 軍진상규명위 13일 해체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1일 낮 12시 유재순씨(오른쪽에서 3번째) 등 군 사망 유가족은 국회앞에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기간 연장을 촉구했다. 사진 유재순씨

지난달 21일 낮 12시 유재순씨(오른쪽에서 3번째) 등 군 사망 유가족은 국회앞에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기간 연장을 촉구했다. 사진 유재순씨

“모든 군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지난달 21일 낮 12시 국회 정문 앞. 흰옷을 입은 유재순(59)씨가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다른 손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활동 기간 연장 촉구’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있었다. 재순씨는 40년 전 군에서 오빠를 잃었다. 고(故) 유재천 상병은 1983년 경기도 수원의 한 부대 소속 헌병대에서 복무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군 당국은 ‘(유 상병이) 가정불화와 여자관계로 고민하다가 소유했던 총기로 자살했다’고 결론내면서도 유족 측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갓 스물을 넘긴 장남을 잃은 유 상병의 부모는 그로부터 몇 년 뒤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잊혀가던 유 상병의 죽음은 지난 2020년 6월 재순씨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기춘, 진상규명위)에 진정서를 내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진상규명위는 관련 기록 재조사, 심리 부검, 동료 진술 확보 등을 거쳐 지난 6월 26일 유 상병의 죽음에 군 내 가혹 행위가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 상병에 대해 순직으로 재심사하라고 국방부에 요청했다. 재순씨는 “군 자체 조사에 그쳤다면 진실을 밝힐 수 있었겠냐”며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이들의 한을 풀기 위해선 진상규명위의 활동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5년간 군 사망사고 진상 파악

 진상규명위는 2019년 9월 14일 출범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는데 무분별한 진정을 막기 위해 진정인 자격을 군에서 사망한 이의 친족이나 사건 목격자로 제한했다. 근거를 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3년 간 작동하는 한시법인 터라 진정기간도 법 시행일로부터 2년 이내(2020년 9월 14일까지)로 설정했다. 2020년 법률이 개정되면서 활동기한이 2023년 9월 14일까지로 2년 더 늘었고 위원회가 직접 조사에 착수할 수 있는 직권조사 권한도 생겼다.

故 최점석 하사(왼쪽)의 생전 모습. 최 하사는 마산함에 승선해 1년 2개월 동안 군 생활을 하다가 1994년 12월 28일 극단선택을 했다. 사망한 지 26년만에 최 하사가 생전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사실이 진상규명위 조사에서 드러났다. 국방부는 최 하사의 순직을 인정했다. 사진 최점석 하사 유족

故 최점석 하사(왼쪽)의 생전 모습. 최 하사는 마산함에 승선해 1년 2개월 동안 군 생활을 하다가 1994년 12월 28일 극단선택을 했다. 사망한 지 26년만에 최 하사가 생전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사실이 진상규명위 조사에서 드러났다. 국방부는 최 하사의 순직을 인정했다. 사진 최점석 하사 유족

이후 수많은 사건이 규명위를 거쳤다. 2019년 규명위는 1969년 ‘호기심에 수류탄을 만지다 폭발사고를 불렀다’고 기록된 정모 일병이 실제론 수류탄 폭발사고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20년 6월엔 1994년 12월 함정에서 극단 선택한 최점석 하사(사망 당시 21세)의 죽음에 선임의 가혹 행위가 영향을 미쳤고 1장 뿐이라던 최 하사의 유서가 실제론 2장이었단 사실도 규명위 활동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규명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까지 군사망사고 1853건(진정 1787건, 직권조사 66건)이 처리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 관계자는 “군이 밝히지 못한 사망사고의 진상을 파악해 명예 회복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고 평가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위의 활동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2018년 9월 국방부 의문사조사제도개선추진단이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1948년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된 후 사망한 군인은 23만여명(6·25 및 베트남전 전사자 포함)이고 이중 순직으로 처리되지 않은 군인은 약 3만9000명이다. “규명위가 1853건의 진상을 규명했지만 이는 전체의 4%에 불과하다(군 사망 사고 유가족 모임)”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준철 한국 ROTC중앙회 권익위 부위원장은 “학군단 동문들 중에도 유족을 찾지 못해 죽음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은 이들이 많다. 진상규명위 활동을 연장해 이들에 대한 직권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 활동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난 5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진상규명 조사기간을 3년 연장하는 내용이 담긴 ‘군사망사고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난달 10일 인권위원회도 대통령과 국회의장에 “규명위 활동시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3일 기준 개정안은 법안 소위도 넘지 못한 상태다.

국회 국방위에선 “특별법으로 군 사망사고를 조사하는 민간 임시기구를 두는 것 보단 군 내에서 조사하는 방안이 낫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한다. 진상규명위의 활동 종료(이번 달 13일) 안에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군 사망사고도 대부분 민간 수사를 받는 게 원칙이 됐는데 아직 못 밝힌 죽음을 조사할 민간조사기구가 해체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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