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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수진의 아트풀마인드

인공지능, 기술이 예술이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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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수진 문화예술기획자·한국외대 초빙교수

신수진 문화예술기획자·한국외대 초빙교수

기술이나 예술이나 새로운 것이 살아남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기술은 일단 사용자나 감상자에게 새롭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만 성장과 안착의 기회를 얻게 된다. 경험의 최신성이 대중적 관심을 높이고, 관심이 직접적인 관여로 이어지고, 사용이나 감상과 같은 실질적인 관여가 본격적인 진화를 끌어낼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이 문턱을 못 넘어서면 빠르게 잊히고 말 테니, 세상을 바꿀 기술도 역사에 남는 예술도 기대하기 어렵다.

AI 연계한 미술관 속속 선보여
초상화 그려주는 로봇과 대화
모든 예술은 기술의 도움 받아
예술도 기술도 질문이 출발점

속초시에 개관한 뮤지엄 엑스 풍경. AI가 만든 캐릭터 등을 설치했다. [사진 뮤지엄 엑스]

속초시에 개관한 뮤지엄 엑스 풍경. AI가 만든 캐릭터 등을 설치했다. [사진 뮤지엄 엑스]

어떤 기술이 아직 새롭다고 느껴지는 동안엔 확장적이고 실험적인 시도가 가능하다. 사용자의 관심에 힘입어 본격적인 기술의 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시기에 개발자와 사용자는 상호 간에 중요한 협력자가 된다. 이것은 특히 웹 기반 네트워크에 힘입어 모든 상호작용의 속도가 빨라진 21세기 기술 진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새로움을 제공하는 생산자과 새로움을 경험하는 소비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기술의 생존과 성장에도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어떤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가,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이 기술적으로 내재하였는가, 상호작용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지위를 동등하게 만들 수 있는가 등이 기술을 처음 세상에 내놓는 사람들에게 간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다.

2007년에 처음 등장한 아이폰은 애플리케이션 경제를 만들면서 애플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로 성장시키는 결정적 동력을 제공하였다. 사용자에게 인사이트를 주는 기술, 사용자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자신의 자원을 투입하게 하는 기술의 플랫폼을 제시함으로써 아이폰 사용자를 잠재적 사업 파트너로 끌어들인 것이다.

아직은 베타 버전 상태인 챗GPT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시작부터 사용자의 행동을 전제로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처럼 사용자가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화형 인공지능서비스는 이미 익숙하게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온 기술의 변주일 수도 있겠다.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자연어 처리를 한다는 기능이 기술적으로 새롭진 않지만 기계와 인간이 인간의 언어로 대화한다는 사용자의 경험은 분명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은 개별 작품의 가치를 높이기보다 산업적인 접근의 가능성을 먼저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가들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창작 활동에 신기술을 활용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은 저작권과 사용권에 대한 경험치가 적어서 그 가치를 논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문화산업 분야에서의 시도는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인공지능 기술은 문화적 체험 요소를 버무려서 어디에도 없던 콘텐트를 비교적 빠르고 다양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템파에 있는 달리 뮤지엄은 일찍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서 살바도르 달리가 환생한 듯이 직접 미술관을 안내하거나 그의 명작을 미술관 공간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몰입형 전시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선 지난달 강원도 속초시에 문을 연 뮤지엄엑스(대표 김용민)가 몰입형 전시와 인공지능을 본격적으로 연결하였다. 세 개 층으로 이루어진 뮤지엄 내부에는 10여 종의 체험형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관객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로봇과 마주 앉아서 수다를 떨거나, 그네를 타면서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거나 트램펄린 위를 구르면서 무한 공간을 나를 수 있다.

전시장 출구는 바다와 호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루프탑 공간으로 이어지는데 그곳에 설치된 대형 캐릭터와 카페 공간 역시 스토리텔링 GPT가 창작한 것을 촘촘한 매뉴얼로 정리해서 구현한 것이다. 캐릭터 모양과 색은 물론이고 카페 공간에 들어가는 그래픽이나 집기까지, 전부 다 인공지능의 학습 과정과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나 별반 다르지 않다. 좋은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을 이끌고, 질문하는 자가 풍요로운 열매를 맺는다.

신수진 문화예술기획자·한국외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