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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담대 막차 놓칠라…” 8월 은행 가계대출 1.6조 급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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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부 긴축 기조에도 불구하고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는 더 가팔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늘어나는 가계 빚을 막고자 일부 대출 상품을 규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출 막차’를 타려는 수요가 더 몰려서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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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이 680조8120억원이라고 밝혔다. 7월 말(679조2208억원)과 비교해 1조5912억원 늘었다. 한 달 증가 폭으로는 2021년 11월(2조3622억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대다.

기준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에 줄어들던 가계대출은 지난 4월부터 증가로 돌아섰다. 지난 4월 가계대출 증가는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정책 모기지 출시 효과가 반영된 특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후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지난 5월부터 늘기 시작해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증가했다. 전월 대비 증가 폭은 1431억원(5월)→6332억원(6월)→9755억원(7월)→1조5912억원(8월)으로 확대 중이다. 특히 지난달 가계대출 급증세를 이끈 것은 역설적으로 금융당국 대출 규제 소식이다. 지난달 10일 정부는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과 특례보금자리론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연령 제한 및 판매 중단까지 검토됐다. 하지만 연령 제한은 나이 차별이라는 지적에 DSR 산정 기준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개선 방향이 잡혔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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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갑작스러운 정부 대출 규제가 “집을 사고 싶어도 돈을 못 구할 수 있다”는 불안 심리를 키웠다는 점이다. 실제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정부 규제 소식이 전해진 이후 지난달 말 2조8867억원까지 증가했다. 7월 말 잔액(8657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 새 2조원 넘게 늘었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취급 중단을 선언한 NH농협은 지난달 25~31일 주택담보대출이 5082억원 급증했다.

최근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부동산 가격도 우려 요소다. 부동산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재상승 우려가 확산할 경우 문재인 정부 때처럼 ‘더 늦으면 아예 못 산다’는 식의 ‘영끌 가계대출’ 현상이 재현될 수 있다. 충분한 부동산 공급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 규제만 강화하다 오히려 집값 불안을 자극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최근 아파트 공급은 원자재 가격 오름세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제한으로 급격히 축소한 상태다. 여기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철근 누락 사태가 터지면서, 공급이 더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부동산R114가 입주자모집공고를 분석한 결과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8576가구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다. 이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부동산 공급 부족이) 분명히 초기 비상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9월 중 부동산 공급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수요 측면에서 일부 가계대출은 제한할 필요가 있지만, 부동산PF 등 공급 측면은 오히려 금융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탄력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결국 언제든 집을 살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줘야 시장 불안이 진정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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