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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대응 능력 없어” 외국인, 한달 새 14조원 ‘차이나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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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호 12면

중국 증시 떠나는 외국인

지난달 21일 중국 상하이 도심에 위치한 주식 전광판. 이날 중국 인민은행은 대출우대금리를 0.1%p 인하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미온적 대처라는 평가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중국 상하이 도심에 위치한 주식 전광판. 이날 중국 인민은행은 대출우대금리를 0.1%p 인하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미온적 대처라는 평가다. [EPA=연합뉴스]

부동산 시장에서 촉발된 중국의 경제 위기가 금융시장으로 옮겨 붙고 있다. 흔들리는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에 외국인은 중국 주식과 채권을 내다 파는 ‘차이나런’(China run)에 나서고 있다. 위안화 가치는 연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는데(환율 상승), 연말 더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김동하 부산외대 중국학과 교수는 “시진핑 주석은 취임 이후 사교육 억제, 빅테크 규제 정책 등 대표적인 시장경제 억제 정책을 연달아 펼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켜왔다”며 “2013년부터 점차 커지던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최근 부동산발 위기로 발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이나런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중국 증시에서 지난달 10일부터 23일까지 13일 연속 순매도해 2016년 집계 이래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기간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팔아 버린 주식은 약 107억 달러(약 14조원)에 달한다. 그동안 중국 증시를 떠받들고 있던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주가는 급락세다. 1일 중국 1위 전기차업체 비야디(BYD) 주가는 7월 31일 대비 8.4% 하락했고, 텐센트와 알리바바도 같은 기간 각각 8.3%, 7.5% 하락했다. 중국 추종지수인 모건스탠리(MSCI) 중국지수는 1일 기준 7월 31일 대비 8% 하락했다. MSCI 중국지수는 특히 지난해 10월 이후 상승세가 멈춘 상태다.

주식거래 인지세, 15년 만에 인하

위안화 가치도 연중 최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밖에서 거래되는 역외 위안화는 올해 1월 대비 5.2% 하락해 1일 달러당 7.2위안을 기록했다. 중국의 심리적 환율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포치(달러당 7위안)는 지난 5월 무너진 지 오래다. 블룸버그의 예측대로라면 향후 역외 위안화 가치는 더욱 떨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29일 블룸버그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역외 위안화 환율은 연말까지 달러당 7.6위안을 기록할 것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성기용 소시에테제네랄 스트래티지스트는 블룸버그를 통해 “위안화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중국 중앙은행의 정책적 대응은 현재 추세(위안화 약세)를 바꾸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가 부동산에서 시작해 금융 위기로까지 확산한 이유에 대해 중국 정부의 수준 이하 위기 대응 능력을 꼽는다. 중국 인민은행은 각종 경제지표가 저점을 달리는 상황에서도 지난달 21일 통상 기준금리로 사용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0.1%포인트 인하하는 데 그쳤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경제 위기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강력한 조치를 기대하는 것과는 반대로 흘러간 것이다. 경제 상황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판단이 안일한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비즈니스포럼에서 “중국 경제는 강한 회복력과 엄청난 잠재력, 큰 활력을 갖고 있다. 중국 경제라는 거대한 배는 계속 바람을 타고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보여 외국인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사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일관성과 합리성을 잃은 경제 정책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불안을 키워왔다. 7월 개정한 방첩법·대외관계법이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는 부진한 경제 상황으로 외국인 투자가 필요한 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방첩법을 개정해 외국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되레 키우는 모순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위기가 터지자 외국인들이 서둘러 짐을 싸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방첩법·대외관계법을 내세우면서 지난달 13일에는 외국인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외상 투자 유치 확대’ 조치를 발표했다”며 “합리성과 일관성을 잃은 모순된 정책에 투자자들은 중국 경제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고 판단해 빠르게 시장을 이탈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중국을 방문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기업들로부터 중국이 너무 위험해졌기 때문에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점점 더 많이 듣고 있다”며 “지식재산권 도용과 같은 장기적 문제뿐만 아니라 기업 압수 수색, 새로운 방첩법, 이유 없는 벌금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은 기업들이 다른 기회와 다른 국가를 찾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행보에 신뢰를 잃은 건 외국인 투자자뿐이 아니다. 중국이 집중적으로 육성해 온 내수시장마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수출 시장 대신 인프라 투자를 비롯한 내수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펴며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 2006년 64.5%에 달하던 중국의 수출입의존도는 2019년 35.9%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소비 비중도 매년 증가하면서 14억 인구의 소비시장은 중국 경제성장의 핵심요소가 됐다. 2003년 약 5조 위안(약 908조원) 수준이었던 중국 사회소비품 소매총액(소매매출액)은 2012년 약 20조 위안(3633조원),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40조 위안(약 7267조원)으로 8배 가까이 성장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가라앉은 내수시장은 코로나19 엔데믹 이후에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0.3% 하락, 2년 5개월만에 역성장을 기록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가계저축률은 2019년 29.9%에서 2022년 33.5%로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지역 봉쇄가 해제됐음에도 오히려 곳간을 걸어 잠그고 돈을 쌓는 모양새다. 김 교수는 “제로(0) 코로나 정책으로 전대미문의 봉쇄를 경험한 소비자들의 심리적 불안이 심각해 소비 회복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언제 또다시 정부가 문을 걸어 잠글지 모른다는 불신에 사로잡혀 소비를 주저하는 모습은 상당 시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내수시장이 쪼그라들자 중국 정부는 4월 이후 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를 보여주는 소비자신뢰도지수(CCI)를 발표를 중단한 바 있다.

“시진핑 곁 예스맨뿐, 위기 해결 쉽잖아”

중국 주요 경제 지수

중국 주요 경제 지수

문제는 국내외에서 누적된 불신이 중국 경제모델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달 23일 “중국의 병폐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나 경기사이클이 아닌 경제개발 모델의 추락”이라며 “개혁개방 이후 최초의 부동산시장 침체를 맞이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보도했다. 전 교수는 “과거 후진타오 시절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기능했을 때는 정책의 오류가 발생하면 이를 지적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시진핑 체제에서는 모두 ‘예스맨’만 자처하고 있어 지금의 위기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 아시아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사태 때 고강도 대책을 써 위기를 탈출했던 것과는 달리 시스템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한국에도 좋을 게 없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우리기업들이 중국 경제 회복을 계기로 하반기 경기 반등을 노리고 있으나 오히려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며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 우리기업들은 실적 측면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2분기 GDP 성장률(6.3%)에서 알 수 있듯 중국 경제는 여전히 성장세”라며 “7월 소비자물가지수의 일시 하락만으로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다고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28일부터 주식거래 인지세를 기존 0.1%에서 0.05%로 인하하는 등 시장 유인책을 매일같이 꺼내 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인지세를 인하한 것은 2008년 4월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이다. 블룸버그는 인지세 인하를 “투자자들을 침체된 주식 시장으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조치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25일에는 부동산 시장의 선순환을 위해 기존 주택 매도 후 1년 내 주택을 재매수하는 납세자에게 개인소득세를 면제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소규모 부양책으로는 자금 이탈을 막기 어렵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인지세 인하 등의 조치를 했지만 경기회복 둔화 신호가 여전하다”며 “실물경제 촉진을 위한 추가 부양책 없이 증시 지원만으로 지속적인 주가 상승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경제 침체에 코스피 하락세…“동조화 줄어” vs “여전히 유효”

중국발 경제 침체에 국내 증시도 연일 가라앉으며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코스피는 약 110.8포인트(4.1%), 코스닥은 11.27포인트(1.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중국 상하이종합지수가 5.2%, 홍콩 항셍지수가 8.1% 하락한 것과 비슷한 추세다. 중국의 위기가 한국 증시에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8월 원화가치 또한 위안화 약세에 영향을 받아 전월 말 대비 3.8% 하락했다(환율 상승). 외국인들은 지난달 코스피에서 3475억원 순매도하며 지난 6월 이후 3개월 연속 코스피를 순매도했다.

지난해 10월 시진핑 리스크로 중국 증시가 하락할 때 한국 증시는 반대로 움직였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지난해 10월엔 상하이지수와 항셍지수가 각각 4.14%, 13% 하락한 반면 코스피 지수는 3.8% 상승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시진핑 리스크로 인한 중국 증시 하락세는 정치적 리스크였기 때문에 한국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 부동산발 리스크는 한국 공급망과 수출입에 밀접한 영향이 있다 보니 증시가 같은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통상 중국 증시가 가라앉으면 국내 증시도 동반 하락하는 동조화는 수년간 꾸준히 관찰됐던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동조화 현상이 점차 줄어들 것이란 전망과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전망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부진하면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의 자금 이탈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이런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며 “한국 증시도 중국 증시와의 동조화 현상이 옅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실물지표 부진이 한국 수출 부진과 연결돼 있어 코스피와 중국 증시는 연동된 흐름을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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