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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1억 달러 인수 제안도 거절한 청년 ‘로봇광’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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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고석현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55〉 럭스로보 오상훈 창업자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글로벌 이동통신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몰아쳤다.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진 건 이후 그 대항마가 속속 등장하면서다. 2008년 모바일용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가 나오자 기존 휴대폰 제조사들은 아이폰과 본격 경쟁을 펼칠 수 있게 됐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OS를 오픈 소스로 풀어 스마트폰 생태계를 구축했다.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의 가교 구실을 하는 OS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정보기술(IT) 산업에서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이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면서 반도체 칩 사용이 늘어났고, 이에 맞는 OS 수요도 확대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갑 중의 갑’으로 떠오른 이유도 독자적인 OS를 등에 업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MCU용 운영체제 개발 후 창업
코딩 잘 몰라도 설계할 수 있게
“누구나 쉽게 만드는 로봇이 꿈”
로봇 교육 교보재 60개국 수출

회사 키울 자신 있어 인수 제안 거절

오상훈 럭스로보 창업자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럭스로보 본사에서 모디키트로 만든 놀이공원을 선보이고 있다. ‘모디 키트’는 프로그래밍을 하지 못해도 총 12가지의 모듈을 레고블럭처럼 조립해 로봇을 만들 수 있는 DIY(직접제작) 제품이다. 김종호 기자

오상훈 럭스로보 창업자가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럭스로보 본사에서 모디키트로 만든 놀이공원을 선보이고 있다. ‘모디 키트’는 프로그래밍을 하지 못해도 총 12가지의 모듈을 레고블럭처럼 조립해 로봇을 만들 수 있는 DIY(직접제작) 제품이다. 김종호 기자

오상훈(32) 럭스로보 창업자는 2014년 직접 개발한 마이크로컨트롤러(MCU)용 OS인 ‘모디OS’를 기반으로 창업하며 구글·애플·MS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럭스로보 본사에서 만난 오 창업자는 “2017년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1억 달러(약 1320억원)에 인수하고 싶다’며 제안이 왔지만 거절했다. 럭스로보를 더 크게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한국 첫 글로벌 플랫폼 회사를 만들어 구글 같은 회사에 맞서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MCU는 전자제품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칩이다. 컴퓨터에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있다면 전자제품·자동차 등 각종 기기에선 MCU가 이런 역할을 한다. 최근 디바이스가 정교해지고, IoT 기기가 급증하면서 MCU의 수요가 덩달아 늘고 있다.

차세대 IoT용으로 진가 발휘 기대

‘모디OS’는 MCU 칩의 HW와 SW 설계를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도록 통합 OS를 구현한 게 특징이다. 필요한 소자들을 자동으로 추천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회로를 구상하면 3차원(3D) 도면을 만들어준다. 사용자는 그 도면대로 필요한 소자 등을 주문해 조립만 하면 된다. 조립한 칩을 컴퓨터에 연결하면 회로별 특징을 모디OS가 자동으로 설정해 코딩까지 해준다.

“MCU 설계 시 회로와 펌웨어 코딩 파트의 엔지니어가 각각 따로 있어요. 코딩하는 엔지니어가 회로를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프로그래밍해야 하는데, 실제 개발 현장에서는 두 엔지니어가 서로 ‘내가 맞다’며 갈등하는 일이 잦아요. 범용 OS가 있다면 현장의 혼선도 줄어들고, 개별 칩 제조사들이 자체 OS를 개발하는 데 들이는 시간·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럭스로보의 첫 목표는 전 세계 펌웨어·회로 엔지니어 7000만 명 중 10만 명을 고객으로 만드는 거예요.”

조성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모디OS는 중소 가전제품·전자기기·로봇 등에 최적화돼 있고, 저가형 MCU에서도 동작하며 군집 기반으로도 작동하는 게 장점”이라며 “PC·스마트폰에 OS가 탑재된 뒤 다양한 서비스가 생겨났는데, 모디OS가 차세대 IoT용으로 활용된다면 MCU 플랫폼의 혁신 기술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에도 응용되는 로봇 기술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럭스로보는 ‘로봇 천재’로 이름을 날리던 오 창업자가 손승배 대표 등 광운대 연구실 선후배 7명과 함께 ‘누구나 쉽게 로봇을 만들 수 있게 하자’는 목표로 세운 회사다. 2018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오 창업자와 손 대표를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의 리더’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모디OS 외에도 교육용 로봇모듈 ‘모디’, AIoT(AI+IoT) 모듈 제조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매출은 178억원이었다.

‘모디 키트’는 코딩을 못 해도 12가지의 모듈을 레고 블록처럼 조립해 로봇을 만들 수 있는 DIY(직접 제작) 제품이다. 온도·습도·거리 등의 센서로 구성된 ‘인풋 모듈’, 유기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스피커 등으로 구성된 ‘아웃풋 모듈’, 배터리·네트워크 장치 등으로 구성된 ‘셋업 모듈’을 활용해서다. 음성으로 켜고 끄는 조명 로봇과 같이 상상 속 로봇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다. 현재 국내를 비롯해 영국·룩셈부르크 등 60개국 초·중·고교에서 로봇 교육용 교보재로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주행 거리만큼 보험료를 청구하는 캐롯손해보험의 ‘캐롯플러그’도 이 회사의 AIoT 모듈 제품이다. 차량 시가잭에 장착하면 위치정보 시스템(GPS)을 활용해 이동 거리를 산정하고 보험사에 데이터를 전송해준다. 지난해엔 캐롯손보와 합작회사(JV) 럭키박스솔루션을 세우고, 인슈어테크(기술 기반의 보험) 맞춤형 기기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

“모디 키트와 캐롯플러그의 핵심 기술은 바로 ‘모디 OS’에요. 각종 모듈을 연결하고 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했기에 이런 응용 제품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처음 OS를 개발한 뒤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 교육용 모디 키트를 만들게 됐어요. 그 전략이 적중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MCU 시장은 올해 308억7000만 달러(약 40조8700억원)에서 2030년 582억 달러(약 77조16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이 회사에 투자한 권오형 퓨처플레이 대표는 “미래엔 모든 디바이스들이 연결성을 가지고 똑똑하게 작동돼야 한다. 자동차만 해도 많은 센서와 부속들이 연결성 있게 프로세싱하는 추세”라며 “모디OS는 자동차용 MCU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손쉽게 확장할 수 있는 게 경쟁력이다. IoT 산업 성장세에 발맞춰 함께 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로봇 천재’의 도전…“실패도 즐거웠죠”

오 창업자가 처음 로봇에 눈을 뜬 건 다섯 살 무렵 ‘로봇 키트’를 선물 받으면서다. 초등학교 5학년 땐 “직접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부모를 졸라 왕복 3시간 거리 로봇회사에 매주 두 번 ‘출근 도장’을 찍으며 기본기를 배웠다. 고교에 진학해선 직접 만든 로봇으로 세계 로봇대회에서 상을 휩쓸었고, 대학 전공도 로봇으로 정해 연구실에서 밤낮없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창업을 결심한 건 대학 4학년 때에요. 연구실에서 꼴딱 밤을 새우고 첫차를 타고 집에 가던 어느 날이었어요. 어릴 때는 ‘내가 만든 로봇이 하늘을 날아다녔으면…’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땐 취업 걱정이 앞서더라고요. 취업하면 행복할까 고민하다가 창업 쪽으로 방향을 돌렸어요. 제 방에다 개발실을 차린 게 시작입니다.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개발만 하다 보니 어머니가 ‘우리 아들 폐인 되는 거 아닐까’ 걱정을 참 많이 하셨대요.”

이후 대학 선배 손승배 대표 등 연구실 멤버들을 반년 넘게 설득해 함께 럭스로보를 세웠다. 그는 “처음엔 실패의 연속이었고, 모디OS는 7번째 창업 아이템이었다”며 “우리가 가진 건 사람과 기술밖에 없었고 ‘망하면 다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실패라는 생각보다는 도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즐겼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창업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경영 지식이라고는 대학 때 배운 경영학개론이 전부였어요(웃음). 영업을 해본 경험도 없고, 상품을 기획하는 방법도 몰랐어요. 처음엔 ‘돈을 벌겠다’는 것보다 ‘로봇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창업 세계는 아마존…멘토가 중요”

23세라는 어린 나이에 창업하다 보니, 이제는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까지 겪었다. 그는 “한국의 학교 교육은 ‘야생에서 살아남기’보다 ‘잘 갖춰진 곳에서 최고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창업의 세계는 아마존 같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를 하며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도록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철학책도 많이 읽고 술도 많이 마시고, 사람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아마존 한가운데 있던 그에게 도움을 준 대기업은 한화생명이었다. 한화생명은 신사업 플랫폼 ‘드림플러스’를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럭스로보도 그중 하나다.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창업자는 ‘멘토’를 잘 만나는 게 중요해요. 정부가 성공한 벤처 사업가들과 스타트업이 교류할 수 있는 마당을 열어주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가령 정부 지원 사업에 ‘향후 후배 창업가를 위한 멘토링에 참가하겠다’는 조건을 내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봐요. 해외처럼 성공 경험을 자랑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