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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용·소비 둔화…춥지만 겨울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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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고금리 속 ‘나 홀로 호황’을 누렸던 미국 경제도 식어가는 것일까. 미국의 고용 지표와 소비 관련 지표가 일제히 하락했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미국인이 생활필수품 외에는 씀씀이를 줄이며 전자제품과 스포츠용품 소매 기업의 매출도 역성장하고 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지난 29일(현지시간) 미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7월 구인 건수는 882만7000건으로 2021년 3월(840만건) 이후 처음으로 900만 건 이하로 하락했다. 2년 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예상치(950만건)에 크게 밑돈다.

빌 애덤스 코메리카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직으로 임금을 올릴 기회가 줄어들며 향후 임금 상승이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WSJ은 “고용시장이 차가워졌지만, 얼어붙진 않았다”고 진단한다.

이날 발표된 소비 관련 지표도 후퇴했다. 미국 민간경제연구기관 ‘컨퍼런스 보드’가 내는 8월 소비자 신뢰지수는 106.1로, 전달(114)보다 크게 떨어졌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성장률도 예상에 못 미쳤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잠정치도 연율 2.1%로 집계돼, 지난달 발표한 속보치(2.4%)에서 0.3%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2.4%)도 하회한 수치다.

식어가는 고용과 소비는 미국 소매업체 매출에서 엿볼 수 있다.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며 꼭 필요한 데만 돈을 쓰다 보니, 일부 업체의 매출은 마이너스로 뒷걸음질 쳤다. 이날 2분기 실적을 발표한 미국 전자제품 판매점인 베스트바이 매출은 1년 전보다 7.22% 감소했다.

뿐만 아니다. 베스트바이보다 먼저 실적을 발표한 스포츠용품 판매점 풋락커(-9.88%)와 백화점 메이시스(-8.39%), 마트체인 타깃(-4.85%) 등도 일제히 역성장을 기록했다. 메리 딜런 풋락커 최고경영자는 “고객이 재량 소비(가구, 전자제품 등 자유로이 지출할 수 있는 것)에 신중을 기하며 매장 방문객 감소나 낮은 구매 전환율 등의 문제가 2분기에도 지속됐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팍팍한 살림에 소비도 양극화되고 있다. 생활필수품을 싸게 파는 월마트나 할인 판매 전문점인 TJX 컴퍼니 매출은 전년보다 각각 5.88%, 7.73% 늘었다. 닐 손더스 글로벌데이터 전무는 “소비자가 식료품과 생필품 지출을 우선시하며 식료품 시장 점유율이 높은 월마트의 매출은 증가했고, 재량소비재를 많이 파는 타깃은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며 “월마트 매출 증가는 소비자가 지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향후 민간 소비 전망도 밝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쌓아둔 초과 저축액이 고갈되고 있는데다, 오는 10월부터 코로나19로 2020년 3월부터 중단됐던 학자금 대출 상환도 다시 시작된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학자금 대출 상환이 시작되면 소비자 지출이 매달 90억 달러(약 12조원), 연간 1000억 달러(약 133조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소비 감소 우려에 관련 회사의 주가도 지지부진하다. 나이키 주가는 지난 9~24일까지 11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1980년 상장 후 최장 기간 연속 하락 기록을 세웠다. 이 기간 10.99% 하락하며, 시가총액 184억5000만달러(24조4800억원)이 증발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미국 경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이 투자를 예상보다 빠르게 줄여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의 냉각 신호에도 채권과 주식시장은 오히려 상승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지표금리인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금리)은 29일 전일보다 0.08%포인트 하락한 4.12%를 기록했다. 이날 주요 지수는 상승하며 장을 마감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이 한풀 꺾인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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