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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히" 숨죽인 새벽...전국 어시장 1800초 방사능 사투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0일 오전 1시50분쯤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서 작업자들이 고등어 등 수산물을 분류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30일 오전 1시50분쯤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서 작업자들이 고등어 등 수산물을 분류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30일 오전 6시 부산시 서구 충무동 부산공동어시장. 고등어·전갱이·갈치 등 연근해에서 잡힌 생선 240t(1만2000상자)이 경매에 올랐다. 좋은 물건을 선점하려 몰려든 중도매인들이 눈치 싸움을 치열하게 하며 수신호를 날렸고, 경매사는 이에 따라 호가를 중계하며 낙찰자를 결정했다.

‘국민 생선’ 유통 어시장에도 위기감 싹터  

1시간여 만에 경매가 끝나자 어시장 직원과 중도매인들은 “오늘도 무사히 넘겼다”며 안도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하루 최대 2000t을 위판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 어시장이다. 이날은 어획량이 크게 줄어드는 월명기여서 물량이 적었다. 월명기는 밝은 달 때문에 집어등(集魚燈) 효과가 떨어져 어획량이 줄어드는 음력 보름 전후를 말한다.

30일 오전 6시10분쯤 경매가 진행중인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물건을 사러 온 중도매인 수신호를 경매사가 주시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30일 오전 6시10분쯤 경매가 진행중인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물건을 사러 온 중도매인 수신호를 경매사가 주시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특히 ‘국민 생선’ 고등어는 대부분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유통이 시작된다. 중도매인을 거쳐 어시장ㆍ마트 등에 납품되면 소비자가 이를 구매하는 구조다. 지난해엔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수산물 12만4000t(총액 2660억원)이 유통됐다. 하지만 지난 24일 시작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부산공동어시장에도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어시장 관계자는 “오염수 방류 이전부터 조성된 불안감 탓에 수산물 소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했다.

매일 새벽 2시30분, 숨 가쁜 ‘1800초’ 사투  

이에 정부는 ‘방사능 신속 검사’ 카드를 빼들었다. 국민 불안을 빨리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세슘과 요오드 함량을 확인하는 검사다. 결과가 1800초(30분) 만에 나온다고 해서 ‘1800초 검사’로 불린다. 1800초 검사는 연간 8000건 넘게 진행되는 해양수산부 정기 검사와 별도로 전국 43개 어시장에서 매일 진행된다. 윤기준 해양수산부 사무관은 “세슘과 요오드 모두 기준치는 kg당 100베크렐(Bq) 이하다. 유럽 국가 기준(kg당 1000베크렐)보다 훨씬 엄격하다”며 “유통 이전 단계에서 수산물 안전을 확보하고, 국민 불안감을 줄이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30일 오전 2시30분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대한수산질병관리사회 시료 채취 요원들이 방사능 신속 검사에 쓰일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30일 오전 2시30분쯤 부산공동어시장에서 대한수산질병관리사회 시료 채취 요원들이 방사능 신속 검사에 쓰일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부산공동어시장에서도 매일 방사능 신속 검사가 진행된다. 대한수산질병관리사회 시료 채취 요원 2명이 공동어시장에 도착한 건 이날 오전 2시30분쯤이었다. 경매를 3시간 남짓 앞두고 위판장엔 이미 수산물이 가득했다. 이들 중 고등어와 전갱이·갈치가 채취 대상으로 낙점됐다. 이대욱 대한수산질병관리사회 요원은 “조업 계획ㆍ구역과 어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료 채취 대상을 정한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3시쯤 국립수산품질관리원 부산지원에서 한국방사능분석협회 연구원들이 방사능 분석을 위해 시료를 절단, 분쇄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30일 오전 3시쯤 국립수산품질관리원 부산지원에서 한국방사능분석협회 연구원들이 방사능 분석을 위해 시료를 절단, 분쇄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채취·봉인을 마친 요원들은 2.3㎞ 떨어진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부산지원으로 달렸다. 품질관리원 문밖까지 나서 있던 한국방사능분석협회 연구원들이 시료를 넘겨받은 건 오전 2시51분이었다. 시료 채취부터 검사실 전달까지 20여분 만에 끝난 ‘속도전’이다. 이들은 곧장 분석장비실로 들어가 시료 내장을 제거하고 분쇄해 분석을 시작했다. 유석준 한국방사능분석협회 연구원은 “분석에 필요한 건 가식부위(먹는 부위) 1㎏이다. 내장을 먹는 명태 같은 생선은 내장도 함께 분석한다”고 했다.

30일 오전 3시쯤 국립수산품질관리원 부산지원에서 한국방사능분석협회 유석준 연구원이 시료를 방사능 분석 장치에 넣고 있다. 김민주 기자

30일 오전 3시쯤 국립수산품질관리원 부산지원에서 한국방사능분석협회 유석준 연구원이 시료를 방사능 분석 장치에 넣고 있다. 김민주 기자

오전 3시52분 ‘모든 시료에서 방사능 불검출’이란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동욱 연구원은 “신속 검사를 시작한 이래 (방사능 성분이) 검출된 적은 없다”고 했다. 결과는 부산공동어시장 측에 곧장 통보됐다. 박극제 부산공동어시장 대표는 “기준치를 초과한다는 결과가 나오면 해당 어종은 물론 그 어종과 같은 해역에서 잡힌 어종을 전량 폐기하고 조업을 중단한다”며 “매일 새벽 숨 가쁜 ‘1800초 사투’로 수산물 안전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노력이 소비자에게 국내 유통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오전 3시52분쯤 한국방사능분석협회 이동욱 연구원이 이날 시료 분석 결과를 부산공동어시장 측에 문자 메시지로 전달했다. 김민주 기자

30일 오전 3시52분쯤 한국방사능분석협회 이동욱 연구원이 이날 시료 분석 결과를 부산공동어시장 측에 문자 메시지로 전달했다. 김민주 기자

수산물 축제 북새통, 전국선 ‘판촉’ 사활

지역 수산물 축제장은 활기를 띤다. 지난 29일 시작된 부산 강서구 명지시장에서 열린 전어축제장엔 평일인데도 제철 전어를 맛보려는 관광객 발길이 줄을 이었다. 준비한 횟감이 동나 상인들은 물량을 대느라 분주했다. 오염수 방류 이튿날인 지난 25일 개막한 광양전어축제는 5만명, 같은 날 시작된 마산어시장 축제는 1만5000명을 불러모았다.

지난 29일 부산 강서구 명지시장에서 열린 전어축제에 방문객이 몰렸다. 송봉근 기자

지난 29일 부산 강서구 명지시장에서 열린 전어축제에 방문객이 몰렸다. 송봉근 기자

자치단체는 수산물 소비 촉진에 팔을 걷었다. 경남도는 쿠팡 등 대형 유통업체와 협력해 온라인 할인 판촉전을 추진하고 있다. 강원도는 다음 달 5일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광장에서 수산물 할인 특판전을 연다. 인천ㆍ울산시는 수산물 구매 금액의 최대 30%(상한 2만원)를 온누리상품권으로 환급해주는 행사를 준비 중이다. 전남도는 한가위 맞이 ‘수산물 선물 사주기’ 운동을 펼친다. 제주에선 지난 25~27일 수산물 소비촉진 행사를 열었다.

부산항만공사(BPA)는 지역사회 취약가정을 위한 ‘BPA 희망곳간(나눔냉장고)’에 기부할 물품으로 400만원 상당 국산 수산물을 사들였다. 인천해양수산청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매일 수산물 먹기 인증샷’을 릴레이로 올리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해양수산청 측은 인천항만물류협회 등 20여곳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일일 브리핑에서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왼쪽 네 번째)이 방류 이후 실시된 바닷물과 수산물 방사능 검사에 관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 차관은 검사 결과 "WHO가 정한 먹는 물에 대한 방사능 기준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연합뉴스]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일일 브리핑에서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왼쪽 네 번째)이 방류 이후 실시된 바닷물과 수산물 방사능 검사에 관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박 차관은 검사 결과 "WHO가 정한 먹는 물에 대한 방사능 기준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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