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예올 X 샤넬 프로젝트_올해의 장인(우측, 화각장 한기덕)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좌측, 도자공예가 김동준). 사진 예올
8월 25일부터 9월 23일까지 서울 북촌에 있는 예올가에서 재단법인 예올과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함께 준비한 ‘예올 X 샤넬 프로젝트’ 전시 ‘우보만리: 순백을 향한 오랜 걸음’이 열리고 있다. 화각장 한기덕(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9호 화각장 전수교육조교)씨와 도자공예가 김동준씨의 작업이 선보이는 자리다.
재단법인 예올은 전통공예의 가치를 올바르게 성찰하며 미래의 전통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하는 비영리재단으로, 매년 ‘올해의 장인’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을 선정해왔다. 장인정신을 기업철학으로 하는 샤넬은 지난해부터 향후 5년간 예올과 파트너 십을 맺고 한국 공예를 후원하고 있다. “장인정신을 기린다는 부분에 있어 예올과 샤넬은 공통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공예의 미래를 새롭게 조명하고, 한국의 장인과 젊은 작가들을 글로벌에 소개하기 위해 한국 공예를 지원키로 했다”는 게 샤넬 측의 설명이다.
2023 예올 X 샤넬 프로젝트_전시 전경. 사진 예올
특히 올해는 ‘스타 디자이너’ 양태오씨가 총괄 디렉팅과 작품 디자인 협업을 맡았다. 파이돈 출판사가 선정한 ‘세계 인테리어 디자이너 100인’에 선정됐고, 세계적인 건축 잡지 아키텍처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AD(건축가와 디자이너) 100인’에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린 양태오씨는 지난해 ‘공예트렌드페어’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는 “기존의 전통공예를 동시대적인 시선을 갖춘 공예로 선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 현대인과 공명할 수 있는 오브제를 만드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우보만리: 순백을 향한 오랜 걸음’이라는 전시 제목은 우직한 소가 천천히 걸어서 만리를 걷듯, 덜어내고 깎아내며 순수함을 발견해온 화각과 백자의 본질을 통해 옛날과 현재를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예올 X 샤넬 프로젝트 '2023 올해의 장인' 화각장 한기덕씨의 작품. 사진 예올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된 화각장 한기덕씨의 작품은 특히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도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기덕씨는 부친인 고 한춘섭(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9호 화각장) 장인의 뒤를 잇고 있다. 화각(華角)공예는 쇠뿔의 표면을 얇게 갈아 각지(角紙)를 만들고, 그 위에 도안을 그린 후 오방색으로 화려하게 채색해 가구 또는 소품을 장식하는 공예기법이다.
예올 X 샤넬 프로젝트 '2023 올해의 장인' 화각장 한기덕씨의 작품. 사진 예올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에선 문양과 색을 다 덜어내고 쇠뿔 본연의 자연스러운 색감과 질감을 살렸다. 한씨는 “나무들마다 각기 다른 색감과 질감을 가진 것처럼 쇠뿔도 자라면서 저마다의 색상과 질감을 갖는다”며 “어떤 것은 검은 먹색을, 어떤 것은 짙은 갈색을 띄는데 그 순수한 성장통의 흔적을 그대로 살려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게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예올 X 샤넬 프로젝트 '2023 올해의 장인' 화각장 한기덕씨의 작품. 사진 예올
1mm 두께로 얇게 편 투명한 각지를 일정한 모양으로 자르고, 한쪽 면에 흰색을 바른 후 그 면에 다시 접착제를 발라 가구에 붙인 뒤, 반대쪽인 겉면에 얇게 옻칠을 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완성된 화각 가구들과 도시락 등은 아이보리 톤의 투명함을 기본으로 군데군데 쇠뿔이 원래 갖고 있던 미묘한 톤의 색들이 퍼진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공간에 놓여도 은은하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빛날 만하다. 한씨는 “이전에는 해본 적 없는 시도라 처음에는 겁도 났지만, 공예도 새로운 도전을 해야 현대인의 일상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했다.
예올 X 샤넬 프로젝트 '2023 올해의 젊은 공예인' 도자공예가 김동준씨의 작품. 사진 예올
‘올해의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된 김동준씨의 조선백자 또한 시각적, 감성적으로 순백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조선시대 관요 백자의 산실인 경기도 남종면에서 수학하며 작품 활동을 해온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불완전한 요소들이 주는 직관적인 감동이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예올 X 샤넬 프로젝트 '2023 올해의 젊은 공예인' 도자공예가 김동준씨의 작품. 사진 예올
예를 들어 그가 선보인 백자 그릇과 접시들은 위에서 보면 관요의 매끈하고 날렵한 긴장감이 돋보인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지방요 특유의 소박함과 자유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접시 안에 찍혀 있는 흙 자국도 예사롭지 않다. 이는 원래 지방요에서 접시를 구울 때 겹쳐 쌓은 흔적인데, 김씨는 이를 깨끗하게 갈아내지 않고 그냥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생겼던 불가피한 흔적인데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두었죠.”
예올 X 샤넬 프로젝트 '2023 올해의 젊은 공예인' 도자공예가 김동준씨의 작품. 사진 예올
금이 가고 상처 난 항아리를 보고 감동을 받아 도자공예를 시작했다는 그는 “처음부터 일부러 흠집 나게 만들 순 없으니까 옛날 방식대로 불완전한 환경을 만들어놓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은 대부분 곱게 정제된 백토를 공장에서 사다 쓰지만, 저는 백토 자체를 사다가 직접 수비(여러 가지 혼합된 점토와 원료를 물에 풀어서 가라앉혀 앙금만 걷어서 쓰는 방법)해서 쓰고 있죠. 지난해에는 서양식 가마를 아예 없애고 전통방식 가마만 운영하고 있어요. 전통방식을 고수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이런 과정에서 나온, 조금은 덜 완벽하게 느껴지는 불완전한 요소들이 보는 이들에게 직관적인 감동을 주고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죠.”
2023 예올 X 샤넬 프로젝트_전시 전경. 한기덕 장인과 김동준 도자공예가의 협업 작품. 사진 예올
2023 예올 X 샤넬 프로젝트_전시 전경. 한기덕 장인과 김동준 도자공예가의 협업 작품. 사진 예올
한기덕 장인이 만든 화각 꽃이 핀 작은 정원. 사진 예올
전시장에선 두 사람이 협업한 작품들도 볼 수 있다. 김동준씨가 만든 백자에, 한기덕씨가 만든 화각 뚜껑을 얹은 식기 세트다. 작은 그릇 하나가 이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니, 놀라운 풍경이다. 전시장 2층에선 초록빛 이끼 위에 화각 꽃이 핀 작은 정원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무료.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예올X샤넬 프로젝트, 지난해 이어 두 번째 전시 #'우보만리: 순백을 향한 오랜 걸음' #화각장 한기덕, 도자공예가 김동준 작품 선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