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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한개 달린 용이나 해치 얼굴”…광화문 지킴이 100년만에 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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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 유족 측이 최근 기증한 서수상(瑞獸像, 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 2점의 정면 모습. 뿔이 한 개 달린 용이나 해치로 추정되는데 뿔은 당시 관례에 따라 눕힌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뉴스1]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 유족 측이 최근 기증한 서수상(瑞獸像, 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 2점의 정면 모습. 뿔이 한 개 달린 용이나 해치로 추정되는데 뿔은 당시 관례에 따라 눕힌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뉴스1]

1920년대 일제가 훼손한 광화문 월대(月臺, 돌로 만든 궁궐 진입로) 복원의 마지막 퍼즐이라 할 석조각 2점이 100년 만에 돌아왔다. 한때 월대의 양쪽 난간 앞쪽에 자리했던 서수상(瑞獸像, 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이다. 문화재청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생전 소장했던 이 석조각들을 최근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았다고 29일 밝혔다.

기증된 석조각들은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이 1865년 무렵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정문인 광화문 앞에 넓게 조성한 월대에 놓였던 것들이다. 광화문을 찍은 1910년대 유리건판 사진 등에선 월대 난간석(울타리처럼 두른 석조 구조물) 앞쪽 계단에 긴 몸통의 동물 석조각 2점이 보인다.

일제는 1923년 전차 선로 개설과 도로 정비 등을 이유로 광화문 월대를 훼손했고, 1927년엔 끝내 광화문까지 철거·이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월대 부재의 행방도 묘연해졌다.

문화재청은 지난 4월 이 석조각 추정 유물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야외 정원에 놓여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마침 광화문 인근 발굴 조사를 통해 월대의 모양과 크기, 어도(御道·임금이 다니는 길) 계단 터 등이 확인된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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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길이 약 2m의 석조각 실물을 조사한 결과 발굴조사로 확인한 소맷돌(돌계단 옆면의 마감돌) 받침석과 이음새가 맞아떨어지고 형태와 규격, 양식이 과거 광화문 월대 사진 속 모습과 같았다. 김민규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뿔이 한 개 달린 용이나 해치로 보이는데, 전체적인 생김새가 경복궁 내 근정전 남쪽 계단의 서수상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경복궁 중건 공사를 기록한 『경복궁영건일기』에 광화문 월대 난간석이나 서수상 언급이 없는 거로 봐서 시차를 두고 조성됐을 가능성이 있다. 애초엔 월대의 중심부인 어도 들머리에 놓여있다가 훗날 난간석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광화문 해치상 등과 양식적인 유사성이 있고, 뿔의 개수나 눈썹, 갈기의 표현 방식과 가공기법 등을 다른 서수상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있다.

이들 서수상은 이건희 회장 개인 소장품으로 입수 경위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호암미술관이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1982년 4월 개관할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재청이 이들 서수상이 광화문 월대 부재였다는 소견을 전하자 유족 측은 국가 기증 의향서를 보내왔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 유족은 지난 2021년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을 포함한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기증한 바 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2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증식을 열어 유족을 대리한 참석자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이로써 오는 10월 복원 공개가 임박한 월대 조성이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문화재청 조은경 복원정비과장은 “난간석에 서수상까지 맞물리면서 광화문 월대가 한층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오는 10월 광화문 월대 복원 공개행사 때 그간 제작해 두고 교체를 미뤄온 새 광화문 현판도 내건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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