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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생가 앞 공사 한창…거리 방명록엔 “광주역사 오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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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9일 광주 동구 불로동 정율성 생가 부지에서 진행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현장. 정율성 역사공원은 48억원을 들여 만든다. 황희규 기자

29일 광주 동구 불로동 정율성 생가 부지에서 진행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현장. 정율성 역사공원은 48억원을 들여 만든다. 황희규 기자

29일 오전 10시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현장.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1914~1976) 생가 앞에서 굴삭기 1대가 굉음을 내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생가 앞으로는 건물 폐기물을 실은 덤프트럭이 오갔다. 주변에는 발길을 멈추고 공사 안내판을 들여다보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박모씨는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길래 찾아왔다”며 “논란 속에서 굳이 (정율성 역사공원을) 강행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현장 관계자는 “정율성 공원을 놓고 반대 여론이 일면서 생가를 찾는 시민이 늘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가 정율성 역사공원을 만든다는 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가 광주에서 반대 집회를 여는가 하면 4·19나 5·18 민주화운동 관련 보훈단체도 반발하고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28일 전남 순천을 찾아 “정율성은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댄 적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이자 공산당 나팔수였다”며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 철회에 장관직을 걸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율성 역사공원은 사업비 48억원을 들여 만든다. 전액 광주시 예산이다. 이 중 초기보상비(매입비)는 35억원, 공사비는 13억원이다. 역사공원(878㎡)엔 생가 광장과 정자·관리실 등을 설치한다. 또 생가를 리모델링해 정율성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광주시 관계자는 “올해 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완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율성 거리전시관에도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거리전시관은 정율성 생가에서 2㎞가량 떨어진 남구 양림동 아파트 담벼락에 있다. 이날 찾아간 거리전시관 한쪽에 있는 방명록에는 ‘광주 역사의 오점’ ‘세금 낭비 말라’ ‘광주 역사 더럽히지 말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인근 도로 곳곳에도 역사공원 사업 철회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보였다. 정율성 거리전시관은 인근 아파트 외벽을 게시대 삼아 200여m 공간에 정율성 일대기와 초상화 등 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인근 주민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도 거리전시관을 찾았다고 한다. 주민 김모(52·양림동)씨는 “3년 전 중국인 관광객들이 대형 버스를 타고 와 초상화 앞에서 추모하기도 했다”며 “이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거리가 됐는데 최근 며칠 새 찾는 시민이 늘었다”고 했다. 김씨는 “정율성이 수십억원을 들여 기념해야 할 인물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반면에 “인제 와서 굳이 철거할 필요가 있냐”는 주민도 있었다. 정율성 거리전시관은 광주 남구가 2009년 초 5000만원을 들여 아파트 인근을 정율성로(路)로 지정하면서 건립됐다. 같은 해 7월에는 남광주 청년회의소(JC)가 중국 해주구 인민정부로부터 기증받은 정율성 흉상을 아파트 입구에 건립하기도 했다.

광주 출신인 정율성은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이 노래는 1950년 11월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하면서 가장 많이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정율성은 해방 이후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협주단장 등으로 활동했고, 1949년엔 북한 군가인 ‘조선인민군 행진곡’도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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