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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도박 대박났다"…패션 모르는 인도계 그녀, CEO 되고 한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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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 브랜드 샤넬의 첫 여성 인도계 최고경영자(CEO) 리나 나이르(54). 사진 나이르 SNS 캡처

명품 브랜드 샤넬의 첫 여성 인도계 최고경영자(CEO) 리나 나이르(54). 사진 나이르 SNS 캡처

패션업계 이력 없음, 최고경영자(CEO) 경험 없음, 인도계, 여성. 지난해 1월 리나 나이르(54)가 세계적 브랜드 샤넬의 CEO로 발탁됐을 때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요소들이다. 여성 유색 인종으로는 최초로 샤넬을 이끈 그는, 지난해 기성복·가방·화장품·향수·보석 등 부문에서 170억 달러(약 22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샤넬의 (영입) 도박은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나이르가 샤넬에 합류한 지난해 초, 이 브랜드는 여러모로 위기였다. 2019년 30여 년간 샤넬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났고, 이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전 세계가 셧다운(폐쇄)에 들어갔다. 경쟁 명품 그룹인 케어링(구찌·보테가베네타 등 모기업)과 루이비통모에헤네시(루이비통·셀린느 등 모기업)도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인수·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었다.

1980년대부터 샤넬을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로 성장시킨 고(故) 칼 라거펠트. AP=연합뉴스

1980년대부터 샤넬을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로 성장시킨 고(故) 칼 라거펠트. AP=연합뉴스

나이르는 비누 도브(Dove), 아이스크림 벤앤제리스(Ben&Jerry's) 등으로 유명한 유니레버에서 일한 경력밖에 없었다. 그가 가장 높이 올라간 직책은 인사책임자(CHRO)로, 회사 전체 경영을 총괄한 적도 없었다. WSJ는 "영국에 본사를 둔 유니레버는 69개국에 걸쳐 300개 이상의 공장을 운영하는데, 재봉사들이 하나의 드레스를 놓고 200시간 이상 일하는 샤넬의 파리 아틀리에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전했다.

주변의 반대에도 나이르를 믿고 발탁한 건 샤넬의 공동 소유주이자 회장인 알랭 베르트하이머(75)다. 가브리엘 샤넬의 동업자였던 피에르 베르트하이머의 손자다.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의 회장이자 나이르의 멘토인 나이젤 히긴스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그 자신도 일을 잘해낼 수 있을지 매우 신중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WSJ에 따르면, 나이르는전 세계 여성으로부터 약 7000통의 e메일과 편지로 응원을 받았다고 한다.

나이르는 샤넬 입사 첫 해에 매장과 아틀리에, 각국 지사 등 100여 곳을 돌며 패션과 경영 체계를 공부했다. AFP=연합뉴스

나이르는 샤넬 입사 첫 해에 매장과 아틀리에, 각국 지사 등 100여 곳을 돌며 패션과 경영 체계를 공부했다. AFP=연합뉴스

나이르는 입사 첫해에 샤넬 매장과 아틀리에, 각국 지사 등 100여 곳을 방문하며 공부했다. 라거펠트의 오른팔로 통하는 수석 디자이너 버지니비아르(51) 등에게 조언을 받았고, 프랑스어도 공부했다. WSJ에 따르면, 17명으로 구성된 리더십 위원회를 조직해 디즈니·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의 경영진을 만나 새로운 경영 정신을 불어넣기도 했다.

특히 기술 혁신과 ESG(환경보호·사회공헌·윤리) 경영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2025년까지 재생 가능한 에너지만으로 운영하고, 2030년까지 탄소 발자국을 50%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다. 나이르는 "이 시기쯤엔 명품 소비자의 약 3분의 1이 Z세대 또는 알파 세대가 될 것"이라며 "이들의 소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니레버 최초의 여성 인사책임자였던 리나 나이르는, 가는 근무지마다 여성 화장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 나이르 SNS 캡처

유니레버 최초의 여성 인사책임자였던 리나 나이르는, 가는 근무지마다 여성 화장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 나이르 SNS 캡처

인도 남서부의 작은 마을 콜하푸르에서 자란 나이르는, 월찬드대에서 전자·통신공학을 공부했다. 그는 "인생 초반에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고 회고했다. 유니레버의 여름 인턴으로 입사해 1992년 정식 채용된 그는, 얼마 뒤 인도 공장의 야간 감독관으로 자원했다. 도로·전기가 없는 마을에서 생활해봐야 소비자가 필요한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새 근무지로 옮길 때마다 그는 여성 화장실을 별도로 세우는 '리나의 화장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WSJ에 "나는 이뤄온 모든 과정에서 늘 최초를 기록했다"며 "하지만 내가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내 뒤를 잇는 이들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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