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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현금 곳간’ 비어간다, 상반기만 15조 급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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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금리와 수출 실적 악화 등으로 올해 상반기 국내 대기업의 ‘곳간’ 사정이 팍팍해지고 있다. ‘비상금’ 역할을 하는 현금성 자산이 상반기에만 15조원가량 줄었다. 이처럼 곳간 사정이 여의치 않아지자 기업들은 다른 기업 보유 지분을 매각하거나, 해외 법인의 본사 배당액을 늘리는 등 ‘실탄’ 확보에 나서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27일 중앙일보가 매출 상위 20대 기업(금융사 및 공기업 제외)의 올해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 총합은 210조2701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225조1717억원)과 비교해 6개월 만에 14조9016억원 감소했다. 기업 매출 순위는 CEO스코어의 집계를 활용했다.

현금성 자산이 많은 곳은 자산총액 기준으로 재계 1위인 삼성전자(97조999억원)다. 현대차(28조4923억원)와 기아(16조2173억원), 포스코홀딩스(13조8462억원, 채무증권·예금상품 제외) 등이 뒤를 이었다. LG전자(7조2386억원)와 LG화학(6조8461억원), SK하이닉스(6조4825억원), 한화(5조4945억원), 삼성물산(5조522억원) 등이 5조원 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했다. 올해 상반기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이 줄어든 곳도 삼성전자였다. 지난해 말 114조7835억원에서 지난 6월 말 기준 97조999억원으로 줄면서 17조6836억원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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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간 현금보유액이 늘어난 기업도 있다. 기아(2조6092억원)와 현대차(1조8528억원), SK하이닉스(1조899억원), SK에너지(1조819억원) 등이다. 증가율이 가장 큰 기업은 HD 현대오일뱅크(1764억원→5208억원)로 195.2% 늘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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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비상금 주머니’가 홀쭉해진 건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직후다. 코로나19 이후 위험관리 차원에서 이들 기업의 현금보유액은 지난해 말까지 증가했으나 올해 들어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반도체 사이클 다운턴(하락 국면), 중국 리오프닝 효과 부진 등으로 쌓아놓은 현금이 빠르게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실탄’이 줄고 돈 들어올 상황도 나빠지고 있지만, 기업이 돈을 써야 할 곳은 늘고 있다. K산업 주력 분야인 반도체·배터리 등은 전형적인 장치산업으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공급망 재편 등에 대비하려면 시설투자를 늘려야 한다. 비상금이라도 털어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기업은 대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4대 그룹은 ‘돈맥경화’를 풀기 위해 지난 6~7월 열린 하반기 전략회의에서 글로벌 경기 침체 등 복합위기 상황 대응 방식을 논의했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지분을 매각해 약 3조원의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법인 배당금도 늘리고 있다. 올 상반기 해외법인의 본사(국내 법인) 배당액은 역대 최대인 21조845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1378억원)보다 158배 늘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단기 차입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고금리·수출 악화 등으로 기업의 영업 현금 흐름 창출 능력이 떨어진 데다, 금리 영향으로 재무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들이 차입금도 줄이고 있다”며 “현금이 돌지 않아 단기 투자 등에 필요한 실탄 장전을 못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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