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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있는 흉기난동, ‘묻지마 범죄’ 표현 조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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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독자위원회, 중앙일보를 말하다

제41회 중앙일보 독자위원회(위원장 김준영 전 성균관대 이사장)가 지난 22일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독자위원들은 8월 한 달 동안 중앙일보 지면과 디지털에 실린 주요 기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임유진

임유진

▶임유진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7월 21일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중앙일보는 지면과 디지털을 통해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하지만 신림역 사건 피의자는 경찰 진술에서 “나는 불행한데 다른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분명한 원인이 있음에도 ‘묻지마’라고 하면 범죄의 원인을 범인 또는 가해자에게 묻기보다는 사회로 돌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묻지마’라는 용어 사용을 지양했으면 한다. 8월 7일 자 ‘흉기 든 외톨이’ 기획과 관련해선, 17일 자 시론 “은둔형 외톨이가 묻지마 범죄자인가”에서 지적했듯이, 모든 은둔형 외톨이나 정신질환자가 범죄자가 아닌데 다 같은 연장선에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외톨이를 더 은둔하게 하고, 정신질환자가 더 숨게 할 가능성이 있다. 용어 사용과 진단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철호

지철호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8월 14일 자 “여당 ‘정진석 실형 판사 노사모냐’…법원 ‘부당한 압력 안 돼’” 관련, 언론이 어느 일방의 입장을 거의 그대로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것은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하고 판결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이를 보도하는 것은 최소화하거나 신중할 필요가 있다. 7일 자 “박민식 ‘중국이 소인배의 길 가고 있다’… 안중근 전시실, 윤동주 생가 폐쇄 비판”, 8일 자 “‘내부 수리 중’ 굳게 닫힌 윤동주 생가…공사 흔적은 없어”는 최근의 국제 관계와 한·중 관계 속에서 중국이 취하고 있는 부적절한 사례를 적절히 보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보도로 중국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이나 감정만 나빠질 수 있으므로 양국 관계가 긴밀한 기사도 적극 발굴해 함께 보도했으면 좋겠다.

심재웅

심재웅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신림역·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관련해 중앙일보는 단순 사건 보도 외에도 심층 기획을 통해 다양한 진단과 해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원인을 파헤치려다 보니 조급함이 있을 수밖에 없고 성급한 진단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8월 7일 자 ‘흉기 든 외톨이’ 기획은 일련의 사건의 공통점을 분석하면서 ‘소외형 아노미’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사회 주류에서 이탈했다는 소외감 때문에 가치 혼란을 겪다가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등의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 하지만 이는 24만 명이나 된다는 은둔형 외톨이를 낙인 찍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7월 31일 자 ‘이제는 이민 시대’ 기획은 매우 좋았다. 일본·캐나다·독일·프랑스 등의 이민 정책 특징이 뭔지, 결과는 어떤지 등 구체적인 사례를 잘 보여줬다. 8월 1~2일 ‘현수막 정치’ 특집 기사 역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통쾌하게 진단한 기사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나라는 어떤지, 현수막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지 등을 함께 다뤘다면 조금 더 좋은 기사가 됐을 것 같다.

이영주

이영주

▶이영주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이사장=8월 1일 자 “검찰도 보완수사 참여, 경찰의 수사종결권 축소한다”는 지난 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소위 ‘검수완박법’이 시행되면서 축소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현 법무부에서 복원하려고 추진 중임을 보도했다. 수사권 조정 결과로 사건의 처리가 현저히 지연되고 국민이 피해를 보는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경찰의 사건 지연, 졸속 처리와 같은 문제는 검찰 수사권을 복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인지 중앙일보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전병율

전병율

▶전병율 차의과학대학교 보건산업대학원장=8월 2일 자 ‘심장질환 의료 붕괴’ 기획은 지방의 ‘필수 의료’ 부족 실태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의사들이 지방 진료 현장을 떠나는 현실과 원인을 잘 짚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도 잘 보여줬다. 또한 독자 입장에서 향후 위급한 진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됐을 때 열악한 진료 현장으로 인해 ‘나의 생명이 위급해질 수 있구나’라는 상황을 생각하게 하는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또 8월 23일 자 “98만원에 산 아기 300만원에 되팔았다” 등 아동 매매 관련 일련의 기사와 같은 달 9일 자 ‘최안나가 소리 내다’ 등을 통해 아동 매매와 그림자 아이 실태, 그리고 보호출산제 도입 필요성 등을 잘 전달했다.

정진욱 독자위원

정진욱 독자위원

▶정진욱 시어스랩 대표=8월 8일 자 “강력태풍 카눈, 모레 오전 상륙…부산·대구·춘천 관통”은 순간 최대 풍속이나 예상 강수량 등 태풍의 영향력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정량적 속성을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와 비슷한 과거의 태풍은 무엇이 있었으며 그때의 피해는 어느 정도였고 피해는 어떤 대책이 미흡했기에 발생했으며 따라서 이번 태풍에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 등의 실용적이 내용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 8월 21일 자 “LH, 철근 누락 발표 후 전관업체와 체결된 계약 11건 해지” 등 일련의 기사는 깊이 있게 사건의 본질을 잘 다뤘고 현황도 잘 전달했다. 이번 사건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전관 예우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범죄가 한 나라의 근간과 안전을 얼마나 뒤흔들 수 있는지 드러냈다. 중앙일보가 철저히 후속 기사를 내주기를 기대한다.

박인휘

박인휘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8월 한 달 동안 한·미·일 정상회의 관련 기사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소위 ‘캠프 데이비드 정신’으로 알려진 이번 합의문의 핵심은 3국 간 안보 협력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식인 ‘공동안보(collective defense)’와 어떻게 차별화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반 독자의 관점에서 집단안보·공동안보·협력안보 등의 개념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보도에 앞서 보다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독자들이 이런 개념들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향후 한·미·일 안보협력이 공고하게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독자위원회

독자위원회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관련, 온갖 논란 속에 이번에도 국회의 청문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했다. 이쯤 되면 언론에서 지금의 인사청문회가 안고 있는 폐해에 대해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고 본다. 대다수 국민은 현재의 청문회 제도를 지켜보면서 정치 실종을 넘어 무기력감에 빠져들고 있다. 중앙일보가 인사청문회 제도의 정상화에 앞장서주기를 기대한다.

홍지혜 독자위원

홍지혜 독자위원

▶홍지혜 오픈갤러리 디렉터=8월 9일 자 “킹산직 10만 명 경쟁 뚫은 첫 여성 6인 ‘현장 소통에 앞장’”과 관련, 현대차 생산직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뽑았다는 것은 분명 기삿거리가 되지만 왜 이제야 처음으로 여성을 뽑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분석이 같이 나왔으면 좋았겠다. 또 ‘킹산직’ 같은 단어를 신문의 헤드라인에 쓰는 게 맞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8월 1일 자 “70대 미국인 부부 ‘50년 전 한국 모습’ 1516점 기증”, 3일 자 “전쟁의 슬픔 잠시 잊고, 음악으로 하나 되다” 등 투데이·문화면 기사는 좋았다. 작은 섹션이지만 신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다. 따뜻한 내용으로 꾸며지도록 별도 아이덴티티의 공간을 설정해 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본다.

김준영

김준영

▶김준영 전 성균관대 이사장=잼버리 사태와 관련해,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잼버리가 열리는지도 몰랐던 독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중앙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는 잼버리 등 국제 대회·행사는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이 사전에 다뤄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신림역·서현역 흉기 난동 등과 관련해서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이 같은 사회병리 현상을 폭넓게 다뤄주고 앞서 같은 전철을 밟은 선진국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등이 게재됐다면 좋았겠다. ‘이민 기획’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큰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기획이었다. 다만 너무 정책적으로만 접근한 것 같다. 이민과 관련해서 더 중요한 것은 사회 인식과 문화다. 외국인이 한국에 왔을 때 어떻게 한국 사회에 융화할 수 있도록 할지, 또 포용적 인식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의 진단과 분석 기사가 이어지길 바란다. ‘현수막 정치’도 매우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한 가지 바라자면, 현수막에 쓰인 어휘나 의미, 팩트 등을 분석하면 한국의 정치 수준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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