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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주곡 전곡 연주' 백건우, 요즘 후배들과 무대 늘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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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실내악 무대. 왼쪽부터 송지원(바이올린), 백건우(피아노), 문태국(첼로), 신경식(비올라). [사진 예술의전당]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실내악 무대. 왼쪽부터 송지원(바이올린), 백건우(피아노), 문태국(첼로), 신경식(비올라). [사진 예술의전당]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작곡가이기 전에 피아니스트였다. 손을 다쳐 작곡에 전념하게 됐을 때도 정체성의 일부는 분명히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그의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하나인 피아노 4중주(작품번호 47)는 다분히 현악기 친화적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ㆍ비올라ㆍ첼로가 함께 하는 작품이다. 4개 악장 중 가장 서정적이고 온화한 노래로 사랑받는 3악장은 특히 더 현악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 아름다운 주제 선율은 첼로가 시작하고, 바이올린이 넘겨받는다. 피아노는 이 선율을 한 번도 연주하지 않는다.

후배 연주자들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 선 백건우 #독주ㆍ협연을 주로 하던 노장의 합주 행보 #"연주할 곡 많아 이런 무대 늘릴 것"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이 곡이 연주됐다.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중 하나였다. 첼리스트 문태국(29)이 저음으로 주제를 시작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31), 비올리스트 신경식(25)이 유명한 주제를 돌아가며 연주했다. 피아노는 백건우(77)였다. 올해로 67년째 피아노로 무대에 오르는 거장 피아니스트는 후배들의 소리를 받쳐주며 담담하게 음악을 이어나갔다.

백건우가 한국의 후배 음악가들과 한 무대에서 연주한 일은 2년 만이다. 2021년 8월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 김두민(첼로)과 드뷔시ㆍ차이콥스키를 연주한 무대가 첫 정식 무대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포항음악제에서 임지영(바이올린), 이유라(비올라), 박유신(첼로)과 브람스 4중주를 연주했다. 데뷔한 지 65년 만에 한국 연주자들과 처음으로 선 실내악 무대였다.

백건우는 주로 독주자였다. 열 살에 그리그 협주곡으로 서울에서 데뷔했고, 11세에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한국 초연했다. 26세에 뉴욕에서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을 연주했고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전곡(5곡),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연주와 녹음의 기록을 세웠다. 해외에서는 음악 축제 등에서 실내악 앙상블 무대에 종종 섰지만 유독 한국의 무대는 드물었다. 그러던 그가 최근 후배 연주자들과 연주를 늘리고 있다.

23일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에서 후배 음악가들과 슈만, 쇼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 예술의전당]

23일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에서 후배 음악가들과 슈만, 쇼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사진 예술의전당]

이날 백건우의 연주는 평온했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다른 연주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피아노였다. 하이라이트에서는 거침없이 쏟아지는 음표들로 ‘독주자’ 백건우의 면면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났지만 대체로 차분했다.

연주 후 만난 백건우는 “함께 소리를 낼 때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같이하고 나면 너무 좋다”고 했다. 백건우는 후배들과 함께 연주할 곡을 고르고 함께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슈만에 이어 프랑스 작곡가인 에르네스트 쇼송의 바이올린, 피아노, 현악 4중주를 위한 합주곡을 연주했다. 한 무대에 섰던 첼리스트 문태국은 “해외 무대에서 많이 연주해보신 곡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셨다”고 전했다. 그는 또 “특히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많이 일러주셨는데, 혼자 연주할 때와 완전히 다른 음량과 음색에 대해 의견을 많이 나눴다”고 덧붙였다.

백건우는 “앞으로 이런 무대에 자주 서려고 한다”고 했다. 후배들과 함께 하는 기쁨 때문이지만 실내악 작품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연주할 수 있는 좋은 곡들이 너무나 많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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