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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군사위성' 실패 인정한 김정은, 두 달 뒤 또 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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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지난 5월 31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을 발사하는 장면.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5월 31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을 발사하는 장면. 연합뉴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도가 또 다시 실패했다. 지난 5월 31일 1차 시도에서 실패한 지 85일 만이다.

합동참모본부는 24일 오전 3시 50분께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이라고 주장하는 '만리경-1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 '천리마-1호'를 쐈지만, 3단계 비행 중 비상폭발체계의 오류로 실패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발사 2시간 30분여 만에 이러한 사실을 공식 발표한 뒤 "10월에 제3차 정찰위성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불과 85일만에 재차 위성발사를 시도한 배경은 다음달 9일 북한 정권수립 75주년을 앞둔 실적 쌓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그런데 급하게 재시도 된 2차 발사까지 실패로 결론나면서 경제난으로 가중된 김정은의 북한 내 리더십 위기가 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팎으로 성과 절박한 김정은

김정은이 가시적 성과에 조급함을 보이는 가장 큰 배경은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북한에서 발생한 아사자 수는 245명으로, 최근 5년 평균 110여 명과 비교해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와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봉쇄까지 이어지면서 북한 경제는 '고난의 행군' 이후 최대의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평안남도간석지 건설종합기업소 안석간석지 피해복구 현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평안남도간석지 건설종합기업소 안석간석지 피해복구 현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 노동신문,=뉴스1

특히 먹는 문제는 김정은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지난 2월에는 이례적으로 농촌문제를 단일 안건으로 다룬 노동당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경제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핵·미사일 개발에 매진해온 김정은 입장에선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나 주민을 설득할만한 성과가 절실해졌다는 의미다.

실제 김정은은 군사위성 발사 시도 직전인 지난 21일 침수 피해를 입은 평안남도 온천군에 위치한 안석 간석지를 찾은 자리에서 김덕훈 내각 총리를 세워놓고 "국가경제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며 경제난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돌렸다.

여기에 한·미·일 3국 정상이 북핵에 대응한 공조 강화 방안을 명시한 '캠프 데이비드 합의'로 대북 공조가 강화되는 부담스러운 상황까지 이어지면서, 내부 결속을 위해 반복적으로 활용해왔던 군사 분야에서라도 가시적 성과를 내려다 완벽한 보완을 하지 못한 채 위성발사를 앞당겼을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위해 오솔길을 함께 걸어 오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위해 오솔길을 함께 걸어 오고 있다. 연합뉴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들어 아사자가 급증할 정도로 심각해진 경제 상황이 김정은의 '무모한 선택'을 추동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지난해부터 각종 신무기를 집중적으로 쏟아낸 탓에 지난 5월 실패했던 군사위성 외에는 새로 내놓을 만한 카드가 소진된 측면도 김정은이 조급하게 2차 시도를 하게 된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권 직후부터 지시했지만…

군사정찰위성 보유는 김정은이 집권 초기부터 내세웠던 숙원사업이다. 미국이 위성을 통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피포위 의식'에 따른 대응 논리였다. 그럼에도 군사정찰위성 개발이 늦어지자 김정은은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의 5대 핵심 과제에 군사위성을 포함시켰다.

정찰위성은 선제 핵공격을 위해 필요한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찰위성은 북한이 보유한 각종 미사일의 위협 수위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이 지난 5월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우주개발국 방문 당시 공개한 '만리경-1호'의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5월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가우주개발국 방문 당시 공개한 '만리경-1호'의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두려워하는 북한 입장에서 군사정찰위성은 김정은이 강조하고 있는 '전쟁 준비'와 직결된 군사적 수단"이라며 "북한이 한·미의 주요 전략 자산에 대한 감시·정찰 능력을 확보할 수 있고, 핵무기 운용에 필요한 지휘·통신체계로 활용될 수 있어 위협 요인"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위성 재발사에 나선 시점에도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군사위성 발사를 시도한 이날은 아버지인 김정일 시대의 '선군 정치'를 기념하는 의미를 담은 '선군절'(25일)을 하루 앞둔 날이다. 선대에 이루지 못했던 군사위성 보유라는 성과를 과시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지난해엔 조선인민혁명군(항일빨치산) 창건 90년 기념일을 계기로 심야에 연 열병식 때는 김일성의 항일 활동을 권총 2정으로 단출하게 꾸린 것과 김정은 시대에 만든 핵무기를 극적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북한이 2012년 4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공개한 '광명성-3호' 인공위성의 모습. AFP, 연합뉴스

북한이 2012년 4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공개한 '광명성-3호' 인공위성의 모습. AFP, 연합뉴스

즉각 실패 인정한 김정은, 왜?

북한이 위성을 발사한 당일에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북한은 지난 5월 '만리경-1호' 발사 때와 2012년 4월 '광명성-3호'를 발사했던 당시에도 발사 당일 실패를 전격적으로 인정했다. 특히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이날 위성 발사 실패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과정에선 스스로 발견된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국가우주개발국은 사고의 원인이 계단(단계)별 발동기들의 믿음성과 체계상 큰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비록 발사에 실패했지만, 1차 때보다 기술적 성과를 이뤘고 2개월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김정은이 지난 5월 1차 발사가 실패한 뒤 이를 "가장 엄중한 결함"이라고 지적했음에도 2차 발사마저 실패했다는 점에서, 경제 상황에 대한 '희생양'을 만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위성에 대해서도 특정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지난달 12일 고체연료 기반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8형'을 시험발사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지난달 12일 고체연료 기반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8형'을 시험발사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또 당장 이어지고 있는 한·미 연합훈련에 군사위성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계획이 실패하면서, 일각에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신형 전술미사일 등을 활용한 훈련이나, 무모한 국지 도발을 벌일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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