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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어민들 "나라가 우릴 버렸다"…후쿠시마 수산물값 하락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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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후쿠시마(福島) 제 1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24일 오전, 후쿠시마 앞바다는 여느 여름날처럼 반짝였다. 원전에서 남쪽으로 약 60㎞ 떨어진 이와키(いわき)시 오나하마(小名浜) 항에는 이미 이날 조업을 끝낸 몇몇 어부들이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다들 걱정이 많지만 방법이 있나요? 그냥 계속 바다로 나가는 수밖에요." 어선 관리 일을 하고 있다는 요시다(吉田·36)씨가 말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24일, 후쿠시마 이와키시 오나하마항 수산 시장에서 상인들이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24일, 후쿠시마 이와키시 오나하마항 수산 시장에서 상인들이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후쿠시마 제1 원전을 관리하는 도쿄전력은 이날 오후 1시부터 원전 내 탱크에 보관해왔던 오염수를 바닷물로 희석해 바다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방류 개시를 몇 시간 앞두고 이와키시를 대표하는 수산 시장 겸 식당가인 '라라뮤'에서 만난 상인들은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말을 아꼈다. 1997년 라라뮤가 문을 연 때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해 왔다는 60대 상인은 "동일본대지진 후 12년간 어렵게 버텨왔다. 이번에는 그만큼 타격이 클 것 같지는 않지만 한동안 손님이 크게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했다.

2011년 원전사고 발생 후 후쿠시마의 어업은 한동안 궤멸 상태였다. 이와키시의 어획량은 현재까지도 대지진 이전의 20%에 머물고 있다.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면서 3년 후엔 50%까지 끌어올리자는 계획을 세웠는데 '오염수 방류'라는 악재가 닥쳤다. 당시 쓰나미로 '라라뮤' 건물에도 3m 높이까지 물이 들이닥쳤고 상인들은 오랜 기간 영업을 쉬어야 했다. 상가 안 기둥에는 아직도 그때의 물 높이가 표시돼 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24일 오전, 후쿠시마 이와키시 오나하마항 수산 시장애서 시오노씨가 해산물을 살피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24일 오전, 후쿠시마 이와키시 오나하마항 수산 시장애서 시오노씨가 해산물을 살피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점심시간이 다가왔지만 상인들만 분주할 뿐 해산물을 사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13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시오노(塩野·38)씨는 "이곳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것은 우리가 가장 잘 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았느냐"면서 "방류가 시작되면 사람들도 곧 알아줄 것으로 믿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젓갈 및 건어물 가게 직원인 사가와(佐川)씨는 "6~7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 주민들조차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구입하길 꺼렸다"면서 "원전 인근 소마(相馬)항에서 제조한 김을 팔고 있는데 앞으로 안 팔릴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정부가 어민들을 버렸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2015년 오염수 방출을 결정하면서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어떤 처분도 하지 않겠다"고 일본 어민들 대표단체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전어련)에 문서로 약속했다. 어민 중엔 정부가 약속을 어겼다며 분노하는 이들도 많았다. 23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북쪽으로 약 50㎞ 떨어진 신치마치(新地町)항에서 만난 어부 오노 하루오(小野春雄·71)씨는 "정부가 어민들을 버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약속을 해 놓고는 (총리가) 어민들을 만나러 한 번도 오지 않았어요. 나라가 이렇게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기 전날인 23일, 어부 오노씨가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조업을 준비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기 전날인 23일, 어부 오노씨가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조업을 준비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오염수 방류 전부터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가격은 이미 하락세다. 중국은 이날 일본을 원산지로 하는 수산물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오후 1시, 오염수 방류 개시 소식이 전해지자 전어련은 "오염수 해양 방출 반대하는 어민들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총리가 약속을 확실히 이행해 어업인들을 지지해줬으면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방류 후 어민 지원을 위해 약 800억엔(약 7292억 원)을 마련해 놓았으나 현지에서 만난 어민들은 "돈도 돈이지만, 우리의 바람은 이 일을 계속 하게 해 달라는 것"이라며 착잡해했다.

반대 시민들, 오염수 방류 중단 소송도  

어업 종사자가 아닌 시민들도 방류 개시 소식을 휴대폰 등으로 확인하며 관심을 보였다. 60대 마쓰이 노보루(松井登)씨는 "어민들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오염수 탱크를 계속 늘려가는 것도 주민들에게는 좋지 않다"면서 "다시 지진이나 쓰나미가 닥치면 큰 재앙이 될 테니 조금씩이라도 줄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5세와 3세 두 아이를 데리고 해산물 식당을 찾은 20대 여성은 "당분간은 아이들에게 수산물을 먹이기가 꺼려져 오늘까지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왔다"면서 "일단 방류가 시작됐으니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24일 후쿠시마현 나미에정 해변에서 시민들이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4일 후쿠시마현 나미에정 해변에서 시민들이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후쿠시마 나미에(浪江)정을 비롯해 도쿄(東京)와 센다이(仙台) 등 일본 곳곳에서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시민 단체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후쿠시마 주민들과 변호인단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 인가 취소 및 방류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다음 달 후쿠시마 지방법원에 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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