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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5년뒤 온다는데…벌써 장사 안돼" 전국 수산시장 울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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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장마에 태풍에,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됐는데….”

경남 통영시 ‘서호전통시장’ 이성민 상인회장이 2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이날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가 예정돼 있다. 이 회장은 “이전부터 정치권이 떠드니 사람들이 불안해서 안 왔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가 예정된 24일 오전 경남 통영시 서호전통시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 통영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가 예정된 24일 오전 경남 통영시 서호전통시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 통영시]

서호시장은 ‘대한민국 수산 1번지’를 내세우는 경남 통영 3대 전통시장(중앙·북신) 중 하나다. 통영항 여객선 터미널과 가까워 섬을 찾는 관광객이 회나 조개·멍게·소라 등 각종 수산물을 자주 사간다. 8월은 휴가철 대목이지만, 정작 매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했던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40% 감소했다고 한다.

시장 상인 500여명은 이 회장을 볼 때마다 “회장 손님 좀 데꼬(데리고)와봐” “장사 좀 잘 되게 해봐”라고 하소연한다. 올해 들어 버티다 못한 상인 10여명은 장사를 접고 상인회를 탈퇴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우리 시장은 원래 장사가 잘돼 가입하려고 줄을 섰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정부가) 과학적으로 문제없다 하고, 우리는 국산 쓴다고 말하려 해도, 설명을 들어줄 손님이 없다”고 했다.

어시장축제 코앞인데…상인들 ‘울상’

25일 축제를 이틀 앞둔 지난 23일 경남 창원시 마산어시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25일 축제를 이틀 앞둔 지난 23일 경남 창원시 마산어시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일본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전국 수산물 시장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오염수 방류 바로 다음 날(25일) 축제를 여는 경남 창원 ‘마산어시장’ 상인도 마찬가지다. 마산어시장은 860개 점포가 밀집한 경남 최대 수산시장이다.

수산물 소비 촉진을 기대하며 행사를 준비하던 상인들은 “축제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반응이다. 공들인 축제가 외면받을까 걱정해서다. 2000년부터 시작한 이 행사는 지난해 5만명이 찾았을 정도로 효과가 컸다. 심명섭 마산어시장 상인회장은 “수천만원을 들여 축하공연 무대도 준비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며 “정부가 안전하다고 하지만 소비자들 생각은 또 그게 아니니 답답하다”고 했다.

전국 굴 가운데 70~80%를 생산하는 통영·거제·고성 등 경남 굴 양식업계도 오는 10월 본격 수확을 앞두고 걱정이 크다. 지홍태 통영 굴수하식수협 조합장(우리수산물지키기운동본부 위원장)은 “어민 다 죽게 생겼다”며 “실제 수산물에 문제가 생긴 것도 없는데, 앞서 굴 생산 막바지였던 지난 5월에 20~30%나 가격이 내려갔다”고 했다.

부산 자갈치시장 타격…방사능 검사 문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앞둔 지난 22일 부산 자갈치시장에 손님이 없이 한산하다. 뉴스1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앞둔 지난 22일 부산 자갈치시장에 손님이 없이 한산하다. 뉴스1

수산물 가격은 하락 추세다. 금봉달 부산어패류처리조합(자갈치 시장) 본부장도 ”어중이나 품목을 가리지 않고 최대 20%까지 떨어졌다”며 “오염수 방류가 이뤄지기도 전에 정치권에서 공연한 공포감을 자극하면서 일어난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루 위판량 3200t으로 국내 최대 어시장으로 꼽히는 부산공동어시장 측은 방류 이후 수산물에 대한 신뢰 확보가 급선무라고 본다. 박극제 부산공동어시장 대표는 “최근 자갈치시장 등 (공동어시장에서 위판된 물량을 받는) 주요 시장에선 수산물 방사능 결과 여부와 결과를 묻는 고객 문의가 빗발친다. 상인이 부산공동어시장에 직접 문의해오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며 “매일 이뤄지는 방사능 검사 결과가 전산화돼 웹페이지 등에 공개된다면 공연한 불안감을 줄이고 안전한 유통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수온 피해까지…우럭 400만 마리 둥둥

경남 통영시 욕지도 한 양식장에서도 다량의 조피볼락(우럭)이 폐사해 바다에 둥둥 떠 있다. 연합뉴스=독자

경남 통영시 욕지도 한 양식장에서도 다량의 조피볼락(우럭)이 폐사해 바다에 둥둥 떠 있다. 연합뉴스=독자

일본 오염수 방류에 경남 남해안은 고수온 피해까지 겹치면서 양식장 어민들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해상가두리 양식장이 밀집한 통영과 거제를 중심으로 최근 일주일 사이 신고된 폐사량만 400만 마리에 육박했다. 폐사 어종은 조피볼락(우럭)이다. 우럭은 적정 수온이 12~21도인 찬물을 좋아하는 한류성 어종으로, 28도의 고수온에 취약하다.

경남 통영시에 따르면 지난 22일까지 통영지역 46개 양식 어가에서 고수온 의심 폐사 신고가 접수됐다. 욕지면 29개 어가 273만마리, 산양읍 17개 어가 106만 마리로 379만 마리에 달한다. 같은 기간 통영과 인접한 거제 연안 양식장에서도 13개 어가에서 17만마리 피해가 신고됐다.

현재까지 통영시·국립수산과학원의 조사로 고수온 피해로 확인된 사례만 11개 어가 89만4000마리에 이른다. 피해 금액만 10억8000만원이다. 더 큰 피해 신고가 접수된 욕지면 양식장 조사도 진행 중이어서, 피해 금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 "오염수 영향 미미함"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하루 전인 지난 23일 오전 부산 사하구 부산시수협 다대공판장에서 방사능 검사 요원이 수산물 신속 검사를 위해 어선에 올라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뉴스1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하루 전인 지난 23일 오전 부산 사하구 부산시수협 다대공판장에서 방사능 검사 요원이 수산물 신속 검사를 위해 어선에 올라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류하더라도 우리나라 해역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정용훈 교수는 "동해에 내리는 비에 포함된 삼중수소가 연간 5g 안팎인데, 후쿠시마에 저장된 삼중수소가 모두 2.2g"이라며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 삼중수소 이외의 방사성 물질이 규제 기준 이하로 내려갈 때까지 다핵종제거설비(ALPS) 등으로 정화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후쿠시마 앞바다 10㎞ 이내 서식하는 물고기만 섭취하며 후쿠시마 인근에서 계속 거주할 경우 연간 피폭량은 1μSv에 미치지 못한다"며 "태평양에서 원양 어업으로 잡은 물고기를 ALPS로 여과하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우리나라에서 섭취하더라도 생길 수 있는 피폭량은 연간 0.0035nSv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 해역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고 볼 수 있다"며 "방류한 오염수는 4~5년뒤 우리 해역에 도달한다"고 덧붙였다.

경남 "수산물 방사능검사 생중계" 
전국 지자체는 수산물 안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부산시와 경남도는 연안 모니터링과 유통 수산물 방사능 검사를 강화하고, 주요 기업 구내식당과 온라인 마켓 납품을 통한 수산물 소비 촉진책에 팔을 걷었다. 이와 함께 경남도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사능 검사 과정을 다음 주부터 올해 연말까지 월 2회 생중계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수산물 방사능 농도를 매일 검사해 결과를 실시간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안전 확보 4대 방안’을 마련했다. 유통 이력제와 원산지 표시 품목 대상을 확대(전남도)하고, 원산지 특별 점검대상을 늘리는 방안(울산시)도 시행된다.

정부 역할론도 제기된다. 제주도와 경북 동해안 5개 시군(포항·경주·영덕·울진·울릉)과 경남도 등 지자체는 관련 특별법 마련, 피해 지원 기금 편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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