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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인생은 한방이야” 中 대학 식당에 등장한 복권 판매기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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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상망

사진 중상망

최근 중국 한 대학 식당에 복권 판매기가 설치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중국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졌다.

지난달 중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올라온 한 동영상. 학교 식당의 한쪽 벽면에 무인 복권 판매기 4대가 쭉 설치되어 있다. 밥을 먹고 있는 학생들 사이 역시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복권을 사기 위해 기계 앞에 서 있다.

해당 영상은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을 불러일으켰다. 대학 내 복권 판매기 설치를 바라보는 시선은 첨예하게 갈렸다. 중국 네티즌들은 “교육 기관에서 학생들에게 ‘한탕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우려를 표하거나 “복권 구매는 요즘 젊은 세대가 가볍게 즐기는 놀이 중 하나”라며 수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복권 판매기를 설치했다고 알려진 것은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다롄동연정보대학교 (大連東軟信息學院·Dalian Neusoft University Of Information). 인터넷에서 큰 논란일 일자 다롄동연정보정보학원은 매체에 해당 식당은 다롄 동연정보대학교 B2 식당으로 학교 이름이 들어가지만, 학교 밖에 위치하며 학교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논란을 의식한 듯 기계 역시 얼마 후 철거되었다.

최근 중국의 젊은 세대가 복권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6월 중국의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1.3%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젊은 세대가 ‘한탕주의’를 노리게 됐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중국 매체 신징바오(新京報)는 "젊은이들이 복권을 사는 것이 압박이 너무 심해서 불로소득에 기대를 걸고, 운으로 천명을 거스르려는 것이라는 해석은 실제와 거리가 멀다"라고 평했다. 중국 젊은 세대가 복권을 구매하는 이유는 일확천금을 노린다기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팍팍한 현실… 中 MZ세대가 찾은 탈출구

사진 중궈푸차이

사진 중궈푸차이

“1000만 위안(약 18억 3020만 원)에 당첨되기 vs 1000만 위안 벌기, 어느 것이 더 빠를까?”, “이제는 확률상으로도 복권이 더 현실적이다”,"적어도 복권을 사면 당첨 후 무엇을 할지, 행복한 내일을 상상할 수라도 있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복권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엿볼 수 있다. 중국에서 젊은 세대가 복권을 사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자신을 ‘주우허우(九五後 ·일명 ‘95세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복권 애호가라고 밝힌 한 여성은 중국 매체 신커두(鋅刻度)와의 인터뷰에서 "가끔 10위안(약 1829원)에서 20위안(약 3657원)을 쓰는 거라서 당첨이 안 돼도 크게 상관없고, 운 좋게 30위안(약 3486원), 50위안(약 9143원)에 당첨되면 밀크티 한 잔을 사서 자축하는 정도”라며 “당첨 금액 보다 당첨이라는 두 글자가 즐거움을 준다”라고 말했다. 복권이 고달픈 현실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방법이라고 밝힌 그. 실제로 복권 판매기를 발견할 때마다 놓치지 않고 복권을 한 장씩 구매하고 있다.

중국 젊은 세대에게 복권 구매가 대중화된 데에는 무인 복권 판매기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 과거 중국에서 복권은 대부분 복권 판매점에 방문해서 구매해야 했다. 그런데 쇼핑몰, 길거리에 진열된 무인 복권 판매기는 ‘사회 공포증’이 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진입 장벽을 낮췄다.

기계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복권 종류도 매우 다양한 편이다. 특히 육복희사(六福喜事), 점석성금(點石成金), 몽매이구(夢寐以求), 첨밀밀(甜蜜蜜), 호운십배(好運十倍) 등 각양각색의 스크래치 복권이 젊은 세대에게 인기다. 10위안~20위안(약 1829~3657원)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소소하게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인기 요인이다.

정기적으로 무인 복권 판매기에서 스크래치 복권을 구매하는 청위(程煜)는 반년 동안 복권에 5000위안(약 91만 원)이 안 되는 돈을 썼고, 당첨금으로는 이미 그 이상을 벌었다. 그는 신커두(鋅刻度)와의 인터뷰에서 “기계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고정적으로 두 기계만 공략하는 것이 그만의 비법이라고 밝혔다.

청위는 "지금 젊은 세대가 부자가 되려면 주로 하늘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 절에 가서 향을 피우거나 복권을 사는 거다”라며 "당첨이 안 돼도 공익사업에 참여하는 좋은 청년 아니냐, 하루에 한 가지 선행을 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샤오훙수

사진 샤오훙수

젊은 세대 사이에서 복권 구매 열풍이 일면서 인증샷은 물론, 약 200위안(약 3만 6550원)으로 복권 꽃다발 만드는 법 등이 SNS에서 인기다. 특히 복권 꽃다발은 친구와 연인 사이 센스 있는 선물로 떠올랐다. 복권 당첨 여부와 상관없이 선물 받은 쪽에게 기분 좋은 서프라이즈다.

中 복권 수요층, 점점 젊어진다

중국 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4월까지 중국 전역에서 총 1751억 5000만 위안(약 32조 962억 원)의 복권이 판매됐다. 전년 동기 대비 578억 3300만 위안(약 10조 5979억 원) 증가했다. 이 중 올해 4월 즉석복권 판매액은 89억 3600만 위안(약 1조 637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84.1% 증가했다.

'2022년 스포츠 복권 고객 연구 보고서(2022年體綵客戶研究報告)'에 따르면 72%가 넘는 스포츠 복권 구매자가 복권을 구매한 목적은 ‘당첨’이 아니라 ‘오락과 휴식’이었다. 복권이 일종의 오락 소비재로 중국 젊은 세대의 생활에 녹아든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젊은 층의 소비관 및 생활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간단한 스크래치 복권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즉석에서 즐길 수 있다. 여기에 밀크티 한 잔 값으로 랜덤 박스를 여는 것과 같은 즐거움은 물론, 운 좋으면 돈벌이까지 가능해 젊은이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이에 무인 복권 판매기가 다양한 장소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스크래치 복권 역시 편의점부터 길거리 노점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사진 바이두 사진

사진 바이두 사진

한편, 중국 스포츠 복권(中國體育綵票)은 이런 인기를 예상했다는 듯 2020년 마스코트인 ‘러샤오싱(樂小星)’을 공개했다. ‘러샤오싱’을 활용해 이모티콘, 인터랙티브 게임, 만화 등 다양한 굿즈를 출시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기간 복권 구매자들이 SNS에서 복권 언박싱 인증샷을 올리고 마스코트에 관심을 갖는 등 큰 화제성을 가져올 수 있었다.

복권의 공익적 성격도 젊은 세대의 흥미를 자극한다. 복권기금은 중앙과 지방에 일정 비율로 배분하여 사회복지, 체육 등 사회 공익사업을 위해 특별히 사용된다. 지방 재정국 공식 사이트에 공개된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베이징은 18억 4200만 위안(약 3364억 7814만 원)의 복권 공공복지 기금을 유치했다. 이 중 복리 복권 공익금이 7억 2500만 위안(약 1324억 3575만 원), 스포츠 복권 공익금이 11억 1700만 위안(약 2040억 4239만 원)을 차지했다. 복리 복권 관련 자금은 노인 요양 서비스 개발, 각 지역 사회 공익 및 빈곤 구제사업 지원, 고등교육 신입생 입학 지원 등에 사용된다.

‘당첨되면 대박, 꽝이어도 공익 활동 참여’라는 생각이 중국의 젊은 세대를 복권 기계 앞으로 이끌고 있다.

박고운 차이나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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