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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빠진 '메이드 인 차이나'에 한국 기회?…"섣부른 디리스킹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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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세계의 공장’ 중국의 디플레이션 우려에 주요국들이 앞다퉈 ‘디리스킹(De-risking, 위험완화)’에 나선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중국 의존도는 이미 많이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 위기 등으로 중국의 경제 회복이 더디더라도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2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시가총액의 33%에 해당하는 기업(자동차, 부품ㆍ건설자재ㆍ철강 업종 중심)들의 중국생산법인 매출 비중은 2016년 16%에서 2022년 5%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대중국 수출 비중이 25%에서 23%로 소폭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2022년 한국 기업의 중국 생산법인 매출액(111조원)은 2016년(127조7000억원) 대비 13.1% 줄었다. 중국 생산법인을 아예 매각하거나 청산한 법인 수는 46곳, 이들 법인의 매출은 20조원 규모다. 정여경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16년 한한령, 2018년 미-중 무역갈등, 2020년 코로나19, 2022년 러-우 전쟁과 중국 봉쇄령을 겪으면서 한국 기업들은 중국 관련 불확실성과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미국 내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위상이 약해지고 있는 만큼 한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미국이 중국산 의류ㆍ완구ㆍ기계류ㆍ전자제품 수입을 24% 줄이면서 중국은 미국의 3번째 수입국으로 밀려났다. 중국이 1위 자리를 뺏긴 건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또한 미국은 2024년 6월부터 동남아를 우회해 수입되는 중국산 태양광 제품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는 등 견제를 강화할 예정이다. 정 연구원은 “미국이 주도해 신공급망을 구축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중국의 위상이 약해질 전망”이라며 “길게 보면 글로벌 교역시장에서 중국과의 수출 경쟁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가운데 태양광 등 업종에서 한국 업체들의 반사 수혜가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업계에선 중국의 성장 둔화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과거보다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권효성 블룸버그코리아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6월 기준 19.4%로 최고치였던 2020년 5월(30.8%) 대비 현격하게 줄었다”며 “2000년부터 2017년까지는 중국이 1%포인트 성장할 때 한국 수출이 0.9~1.3%포인트 늘고, 경제는 0.3~0.4%포인트 성장한다고 봤지만, 2018년 이후로는 각각 0.2~0.3%포인트, 0.1%포인트로 줄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5.2%에서 내년 4.7%로 하향할 경우, 2017년 이전이라면 한국 경제 성장률도 0.15~0.2%포인트 낮아졌을 것”이라며 “디리스킹이 진행되면서 지금은 0.05%포인트 낮아지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본다”고 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하지만 섣부른 ‘차이나 디리스킹’은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한국 수출의 핵심인 반도체ㆍ배터리ㆍ희토류 소재의 40~80%를 여전히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데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첨단 기술도 다 무용지물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한국이 중국보다 경쟁력이 있는데도 공급망 리스크 등을 고려해 의존도를 줄이는 게 진정한 ‘디리스킹’인데, 단순히 경쟁에 밀려 퇴출당한 것까지 디리스킹이라고 포장해선 안된다”며 “반도체ㆍ배터리ㆍ희토류는 중국이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등에 투자해서 광산 채굴권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5년간은 대체하기 어려울텐데 섣부른 디리스킹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소장은 “미국이 말하는 디리스킹은 인공지능(AI)ㆍ반도체만 제재하고 나머지는 협력하겠다는 것”이라며 “한국도 중국에 팔아야만 흑자가 나는 분야는 의존도를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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